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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의 마지막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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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이회창씨가 작아 보인다. 본래 작은 키지만 더욱 왜소하게 비쳐진다. 법치와 대쪽이라는 그의 정치적 밑천은 거덜났다. 국가 경영의 야심, 권력 의지 같은 거창한 용어는 애당초 그와 어울리지 않은 듯하다. 대신 차떼기당 우두머리라는 경멸과 냉소의 시선이 한나라당 전 총재인 그에게 쏠려 있다.

그는 회한과 상심 속에 밤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참회의 성명서를 내놓았던 그다. 대선 불법자금은 자신의 책임이고 감옥에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거기에 담긴 정치적 순장(殉葬)의 비장함은 공허해졌다. 그런 장면은 펼쳐지지 않았고 그의 진의는 묻혔다. 검찰은 그를 향한 수사의 칼날을 뽑지 않고 있다. 감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신세. 권력 장악의 진검승부에서 패한 쪽의 처지는 그런 것이다.

그가 자기 뜻대로 감옥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면 권력에 대해 여전히 순진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李씨의 형사처벌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가 감옥에 가면 여론의 한쪽에서 동정심이 꿈틀댄다. 盧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없으면 정치보복 시비에 휩싸인다. 동정심은 민심 흐름을 가르는 데 위력적이다. 총선을 앞두고 현 정권의 부담이다.

노무현 정치의 추진력 중 하나가 동정심이다. 강자를 미워하고 약자에게 연민의 정을 갖는 게 한국인의 보통 체질이다. 노사모의 바탕에는 동정심이 있다. 盧대통령은 언론에 대한 자신의 거친 불만 표시를 강자에 대한 약자의 방어로 해명한다. 강자와 약자로 나누는 순간 깔리는 동정심의 미묘한 파괴력을 盧대통령은 터득한 듯하다. 그런 감정이 李씨와 한나라당 쪽으로 가게끔 현 정권이 방치할 리 없을 것이다.

대선이 끝난 뒤 李씨는 미국의 스탠퍼드대학에 갔었다. 1992년 대선 후 그런 사례가 있었다. 패자인 DJ는 영국에 공부하러 갔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YS는 그것을 달리 해석했다. DJ가 검찰 수사를 두려워해 도피한 것으로 파악했다. YS는 DJ의 과거를 추적하지 않은 것을 승자의 아량이라고 주장했다.

진실이 어떻든 승자의 관용, 패자의 회한 같은 얘기는 지금은 한가하다. 대선이 남긴 진흙탕을 피해갈 수 없다. 세상이 달라졌다. 정치의 썩은 기둥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李전총재는 자기 발로 감옥에 갈 수 없다면 속죄의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 전두환씨가 갔던 백담사가 가톨릭을 믿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으면 비슷한 다른 공간에서 속죄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고해성사다. 그것이 정치판에 새싹을 돋우는 데 도움을 준다.

정치의 부패구조를 확실히 뜯어고쳐야 한다. 그렇지만 정치가 할 일은 자체의 비리 척결만이 아니다. 눈물겨운 청년 실업, 중산층 몰락, 교육 혼선, 숨가쁘게 돌아가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따지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여야가 정치 비리 청산 쪽에서만 경쟁해선 안 된다.

야당이 야당다워야 감동의 정치를 만들 수 있다. 과거처럼 폭로와 투쟁이 아닌 정부 정책에 대한 짜임새 있는 비판과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보수정당의 건전한 정체성을 다듬어야 한다. 지금은 부패 문제에 묶여 야당다움의 진정한 면모를 잊고 있다. 정치가 시민사회단체에 휘둘려 있다. 부패의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시민단체의 정치 과잉 개입은 후유증을 낳는다. 정치의 자생적인 타협과 대화의 풍토를 해친다.

결단은 이회창 정치에서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다. 그러나 부패에 덜미가 잡혀 있는 정치가 제자리를 찾는 데 나름의 마무리 역할을 해야 한다. 진전된 고해성사를 위해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다.

박보균 정치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