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표현한 전통건축의 미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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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26면

단아하면서도 울림이 풍부한 선들이 담백하게 펼쳐져 있다. 선과 여백으로만 이루어진 흑과 백의 조합이지만 부족함이 없다. “드로잉은 재빨리 대상의 특징을 포착하는 데 그 묘미가 있다”는 미술평론가 오광수씨의 말처럼 건축가 김석환(터·울건축 대표)씨의 드로잉은 우리 전통건축에서 묻어나는 자연스러움을 표현했다.
건축가가 회화 작품전을 여는 일은 쉽지 않다. 김석환씨는 1991년 건축가 르 코르뷔제의 삶에 관심을 갖고 건축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일상적으로 스케치를 해왔다. 특히 르 코르뷔지에의 저서『건축을 향하여』에 실린 그림들을 보며 드로잉의 중요성을 느꼈다. 그 뒤로는 늘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틈틈이 드로잉을 했다. 괴테가 “건물은 얼어붙은 음악”이라 했을 때 그처럼 건축가의 생각을 선율처럼 소묘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작품을 모아 1995년, 2005년 두 차례 전시회를 열었고 2006년에는 사진전도 했다. 그 사진을 곁들인 책『한국 전통건축의 좋은 느낌』도 이번 전시에 함께 나왔다.
작가는 “나의 드로잉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려는 일이 아니라 건축적 감각을 포착한 것”이라고 말한다. 건축물의 드로잉은 설계 과정에서 작업실에 앉아 구상하며 그리는 것과 달리 그 건물이 서 있는 바로 그곳, 즉 장소감각을 지닌다. 특히 입지를 중시해 연구를 많이 한 뒤 지은 전통 건축물은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더욱 풍요한 느낌을 준다. 작가가 표현한 풍경 역시 장소와 합일한 장면을 포착해 낸 것이 많다. 필선을 중요시하는 동양 회화의 특징도 그대로 살려냈다. 펜으로 섬세하고 생생하게 표현된 덕수궁 정원의 풍경이 있는가 하면, 먹으로 울창하게 그린 내소사 숲길도 있다. 자연에 순응하는 동양적 사상을 담고 있는 우리의 전통건축을 동양 회화의 기법으로 그려낸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사라진 숭례문 덕에 전통 건축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고조된 지금, 이 전시는 우리의 시선을 전통건축에 더 머물게 만든다.


건축가 김석환- ‘한국 전통건축 드로잉전’
2월 18~29일
영풍문고 종로 본점 북갤러리
문의: 02-399-5600(교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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