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월남전 소재 "플래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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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쓴 소설가 제임스 존스는 『전쟁을 직접 체험한 사람은 체험하지 않은 사람이 상상만으로 쓴 소설을 읽으면 역겨움을 느낀다』고 했다.
프랜시스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이 엉터리 월남전 영화여서웃음이 나오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마틴 신이 출연한 『지옥의 묵시록』은 아프리카를 무대로 삼은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속에서』를 월남전으로 둔갑시킨 것이고,그래서 전혀 현실감이 없다.하지만 마틴 신의 아들 찰리 신이 출연한 『플래툰(Platoon)』은 각본.감독을 맡은 올리버 스톤의 현장 체험은 물론이요,연기자들도 필리핀에서 유격훈련까지 받고 촬영에 임했을 정도로 사실적인 월남전 영화였다.
내가 『플래툰』을 본 것은 87년 『하얀 전쟁』을 영어로 개작하기 위해 미국에 가 있던 당시 뉴욕의 브로드웨이 어느 극장에서였는데 내가 겪은 베트남을 생생하게 느끼게끔 해주었다.
뜨거운 열기의 흰 빛깔,C-130 같은 낯익은 비행기들,야전침대가 늘어선 막사의 내부,포탄 구덩이에 불도저로 밀어넣는 시체들,헬리콥터에서 내려다보는 시각,고향까지의 거리를 표시한 이정표,야간매복을 나가는 긴장감,이런 것들 말이다.
이 영화가 지니는 역사적 가치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한 인기없는 전쟁이어서 아무도 영화나 소설에서 다루려고하지 않던 월남전을 최초로 진지하게 다룬 작품이란 사실에서 비롯한다. 과거의 전쟁영화처럼 지어낸 영웅이나 과장된 무용담을 내세우지 않고 피투성이 현장을 리얼하게 보여주면서도 주제를 내세운 올리버 스톤의 용기는 대단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월남전 참전용사」라면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미국에선 범죄자 취급을 받던 현실을 기억하면 말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크리스가 밴스병장에게 총을 겨눌 때 극장안의 관객이 『죽여라,죽여』라고 고함을 지르던 일이 생각난다.
安正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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