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드라마제작 ‘착취 계약’ 왜 일어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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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외주제작 착취 계약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MBC 아침 드라마 '그래도 좋아'.

지상파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에 ‘가짜 실적’을 올려주고 대가를 받은 뒤 그 대가는 협찬광고 유치로 충당하도록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한국 드라마 산업의 구조가 얼마나 기형적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한류’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부상하며 승승장구하는 듯 보이던 드라마 산업이 내부적으로는 심하게 곪아 들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가짜 실적’에 우는 투자자들=방송계에서는 이 같은 ‘가짜 실적’과 편법적인 협찬 광고 유치가 공공연한 비밀로 통해 왔다. 4억원을 내고 MBC 아침드라마 ‘그래도 좋아’에 공동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던 제이투픽쳐스 관계자는 “워낙 관행적인 일이라 문제가 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더 큰 문제는 실정도 모른 채 ‘가짜 실적’을 믿고 실익도 없는 회사에 투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제이투픽쳐스의 경우 30억원에 이르는 부채만 남긴 채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설립 5년이 지난 이 회사는 실제로는 드라마를 단 한 편도 제작해 보지 못했다. 부채로 굴러가던 이 회사는 지난해 말 대표가 간암으로 숨지면서 멈춰 섰다. 기형적인 드라마 제작 구조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거품을 부채질하고 부실 채권을 양산한 셈이다.

◇정책과 규제가 낳은 편법=2007년 기준으로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방송프로그램 제작사는 모두 850개가 넘는다. 지상파 방송의 ‘외주제작 의무 편성 비율’을 40%까지 끌어올린 외주제작 육성 정책, ‘대장금’ ‘겨울연가’ 등 ‘드라마 한류’가 돈이 된다고 판단해 흘러 들어온 자본 등의 영향이다.

그러나 이들 제작사 중 과반수가 지상파 방송에 단 한 편도 납품해보지 못했다. 드라마의 경우 김종학프로덕션·제이에스픽처스·올리브나인 등 몇몇 메이저 제작사들이 총공급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군소제작사들은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다 보니 4억~5억원을 내고라도 ‘가짜 제작 실적’을 올리려는 제작사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이에 대해 방송사 측은 얽히고설킨 방송 정책과 규제가 이 같은 편법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SBS프로덕션 관계자는 “제작사는 많지만 제작을 믿고 맡길 만한 역량을 갖춘 곳은 찾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방송사가 직접 기업 협찬을 못 받게 한 규제 때문에 명목상으로만 외주제작 프로그램 요건을 갖추는 기형적 구조가 생겼다”고 말했다. 방송법시행령 제60조 ‘협찬 고지’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나 자회사가 아닌, 외주제작사만 협찬을 받을 수 있다.

◇갈수록 뛰는 제작비=스타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등 방송사 예산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제작비가 뛴 것도 혼란의 요인이다. 드라마제작사협회 김승수 사무총장은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에 지급하는 제작비는 많아야 편당 1억원 안팎이지만 실제 제작비는 2억원이 넘는다”며 “KBS 드라마 ‘못된 사랑’의 권상우는 회당 출연료가 5000만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많게는 방송사가 지급하는 제작비 절반가량이 스타 출연료로 나간다는 뜻이다.

방송사들은 “과당 경쟁으로 연예인 출연료를 높인 건 외주제작사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작사들은 “스타를 기용하지 않으면 방송사들이 편성해 주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반박한다. 영화계의 경우 투자 자금이 몰려들면서 배우 몸값은 경쟁적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최근 영화 산업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출연료 자진 삭감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국 드라마는 이제 막 거품이 터지는 단계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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