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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직종별 노조 가입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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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실업자도 산업별.직종별.지역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2일 서울지역여성노조가 "실업자와 구직 중인 여성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노조를 설립하지 못하게 한 것은 부당하다"며 서울시를 상대로 낸 노조 설립신고 반려 처분 취소소송에서 1, 2심과 같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취업 근로자뿐 아니라 일시적으로 실업 상태인 사람과 구직자도 노동 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 '근로자'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서울지역여성노조는 1999년 1월 비정규직 여성 근로자와 구직 중인 여성 등 70여명이 '여성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한 지역노조'를 목표로 결성한 조직이다.

이번 판결은 근로자의 범위를 크게 넓혔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특히 해고자뿐 아니라 학교를 졸업한 뒤 구직 활동을 벌이는 미취업자도 근로자에 포함시켰다. 지금까지 노동부는 근로자를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하고 실제로 재직하는 사람'으로 좁게 해석해왔다. 이에 따라 해고된 실직자, 학교를 졸업하고 놀고 있는 구직자, 자주 실업 상태에 놓이는 비정규직.건설일용직.선원.영세사업장 노동자도 노조에 가입해 활동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단 이들은 개별기업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산별.상급단체노조 등 초기업 단위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에서 일하다 해고된 실직자는 계속 금속노조에 가입할 수 있고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 여성은 서울지역여성노조에 들어갈 수 있다. 반면 학교를 갓 졸업해 한번도 직장을 갖지 못한 실업자들이 노조를 새로 만드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노조는 협상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이 경우는 일반 시민단체 등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실업자 및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를 강화할 계획이다.한국노총 강훈중 홍보국장은 "이들을 초기업노조로 묶으면 임금인상 등 좁은 목표에서 벗어나 실업급여 확대, 취업지원과 같은 사회안전망 차원의 폭넓은 노동운동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계 내부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이해가 엇갈리고 있어 이들이 실업자까지 끌어안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또 재계는 근로조건 개선과 무관한 정치적인 집단행동이 빈발할 것으로 우려하며 실업자의 노조 가입 자격 제한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판결이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과 같은 맥락이라고 보고 이를 법제화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정철근.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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