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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경제학] 브래지어 사러 통계청 갈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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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주부 정인주(37·경기도 고양)씨는 최근 속옷 매장에서 브래지어를 사려다 되돌아 나왔다. 점원이 권하는 제품이 마음에 들었지만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정씨는 “새 디자인이 나올 때마다 가격이 오르는 것 같다”며 “속옷 하나 사는데 10만원씩 쓸 수 없어 할인점에서 1만8000원짜리 이월상품을 샀다”고 말했다.

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 그러나 통계청의 물가 통계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가격이 오르는 브래지어 가격이 통계청 조사에선 3년4개월째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 2004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가격 변동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남자 바지는 더하다. 2000년 10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7년1개월간 가격이 10원도 오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자 바지는 2004년 5월부터 2년간 제자리걸음을 하다 2006년 5월 12.8% 오른 뒤, 다시 21개월째 상승률 0%다. 납득할 수 없는 통계에 근거해 물가상승률이 계산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 통계가 현실과 따로 노는 것은 주먹구구식 조사 때문이다. 브래지어는 무나 파 같은 농산물처럼 통계청 직원이 시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조사하지 않는다. 대표업체 2곳에만 전화를 걸어 가격을 조사한다. 489개 조사 대상 품목 중 113개는 이런 식으로 조사한다.

신제품 출시에 따른 가격 상승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통계청이 조사한 지난달 브래지어 가격은 5만9000원이다. 그러나 비비안의 신상품(드라마틱 볼륨)은 6만5000원이고, 이 회사 추천상품 가격은 9만2000원(장미꽃 모티브 레이스)이다. 통계청은 기존 제품을 대체하는 신제품이 나오면 품질 향상을 감안해 물가지수에 반영한다. 예를 들어 1만2000원짜리 신제품과 기존 1만원짜리 제품을 비교해 2000원 정도의 품질 향상이 됐다고 판단되면 가격이 하나도 오르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품질 판정은 원가 자료 없이 업체가 제출한 자료와 통계청의 판단에 의존하다. 통계청 관계자는 “인력 부족으로 전 품목을 현장 조사할 수 없어서 체감 물가와 통계 간에 괴리가 있다”며 “특히 괴리가 큰 의류 제품에 대해선 연내에 조사 방법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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