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함께>"다산을 찾아서"펴낸 元老경제학자 高承濟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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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국제화.세계화라는 용어가 시대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다산(茶山)이야말로 우리역사에서 가장 일찍이 세계화를 체계있게 부르짖은 선각자입니다.』 20대초반부터 다산에 심취,많은 논문을 발표해온 원로경제학자 봉산(峯山)고승제(高承濟.78)박사가조선후기 실학을 대표하는 정약용(丁若鏞)의 일생을 복원한 『다산을 찾아서』(中央日報社刊)를 냈다.
다산의 사상에 대한 연구서가 많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 책은 다산이라는 개인의 인생역정을 중심으로 그의 독창성을 쉽게 풀이,큰 사상가의 그윽한 세계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86년부터 高박사에게 나타난 오른쪽 신체 마비증세 때문에 대학 생들이 구술을 받아 책으로 엮은 속사정도 남다르다.
高박사는 다산의 저술에 나타난 반(反)중국적 태도를 주목한다.이는 다른 실학자들도 착안하지 못했던 부분으로 다산은 무엇보다 당시 젊은이들이 중국풍의 문화에 전염되지 않도록 경계하라는입장을 유지했다고 한다.그 예로 다산의 「동서남 북론」을 든다. 『모든 나라는 남북을 기준으로 동서에 위치하기 때문에 중앙이란 정하기에 달렸다.중국이라는 중(中)과 동국이란 동(東)은어디를 기준으로 했는지 모르는 일이다.해가 뜨고 짐에 따라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중간이다.따라서 유독 중국 만을 중화(中華)로 부르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高박사는 바로 여기에서세계화의 참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외국과의 교류나접촉의 증대가 아니라 나름의 자주적 생활과 민족의식을 투철히 자각할 때에야 비로소 참된 세계화가 가 능하다는 시각이다.
高박사는 또한 다산의 사상에 담긴 현대성을 간파하고 이를 현실에서 실천하는 자세를 요구한다.다산사상의 핵을 이루는 중용(中庸)의 의미도 이렇게 해석한다.
『다산의 중용은 기하학적인 가운데가 아니라 양극을 포용하는 역동적인 개념입니다.오늘날의 입장에서는 튼튼한 중산층의 양성에해당하지요.정치.경제.문화등 모든 분야에서 중산층이 두터워야 사회가 발전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高박사는 우리의 현주소와다산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물질이나 이념 모두 극단에 흐르지 않으면서 사회의 갈등을 조절하는 세력으로서의 중산층이 형성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산이 강진에 유배되지 않고 현실정치를 계속했더라면 풍류에 빠지지 않고 더 훌륭하고 높은 가치를 창출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표시한 高박사는 현재 사회주의 몰락이후 자본주의의 바람직한방향을 모색한 책을 마무리하는등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도 잊고 올곧게 학문의 길에 정진하고 있다.
〈朴正虎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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