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있는요리>찌라시 초밥-주부 裵鈴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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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훈훈히 스쳐가는 바람결에 기지개를 켜며 움트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베란다의 활짝 핀 철쭉과 유채마냥 이름모를 노란 꽃에서이 집 주부의 「젊은 센스」를 느끼게 하는 배영자(裵鈴子.53.서울강남구압구정동 현대아파트)씨의 아파트는 군데군데 이국적인정취가 배어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남편의 직장때문에 10여년 이상 외국생활을 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는 이마다 물어오는 노란빛깔의 꽃도 따져보면 6여년간의 일본생활이 가져다준 소득(?)인 셈.겨우내 길가 화단을 장식한 보랏빛 양배추가 봄이 되면 노란 개나리 마냥 꽃피운다는 걸 일본에서 알게 됐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살면서 그 나라 사람들을 사귀고 문화를 익히는데 요리만한게 없어요.그쪽 음식을 배우면서 우리의 불고기나 김치.
비빔밥 등 조리법을 가르쳐줘 쉽게 친구가 됐어요.』 학부모 모임이 잦은 일본이라 당시 유치원을 다니던 둘째딸 친구엄마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던 것도 서로 거리감을 좁혀주는데 보탬이 됐다. 그는 일본주부들과 나눴던 많은 일본음식 가운데서도 「찌라시 초밥」을 잊지 못한다.『이별이 못내 서운하다』며 큰 찬합가득 담아온 이 음식은 일본 주부의 맛과 인정이 함께 깃들어 있어 지금도 그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82년 첫 일 본생활을마치고 서울로 돌아올 때였다.
공항에서 건네받은 그 조리법은 85년 다시 일본생활을 시작하면서 완벽하게 그의 것이 됐다.
찌라시초밥은 무엇을 뿌린다는 뜻의 「찌라시」 말 그대로 맛있게 조리한 연근.버섯.당근.유부 등을 뿌린 초밥.입학이나 졸업이 있는 3월에 먹는 일본의 전통음식이기도 하다.
해마다 3월이면 식탁에 오르는 찌라시 초밥.이별을 담아냈던 이 음식은 이제 이 집의 연로하신 시부모님은 물론 세딸과 남편에게까지도 사랑받는 「최고」의 음식이 됐다.
『언젠가 꼬박꼬박 정리해둔 일본요리들을 책으로 펴내고 싶어요.』 모아둔 조리법만도 2백여가지가 넘는다는 그는 『세딸들도 요리를 좋아해 엄마와 딸들간의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흐뭇해한다. 〈文敬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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