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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집권하면 ABB 신조어 생겨날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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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 06면

올 미국 대선은 ‘부시 독트린’이 종언을 고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 독트린의 핵심은 선제공격, 일방주의,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이상주의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지배해온 논리다. “내 편이 아니면 적(with us or against us)”이라는 부시의 언급은 그 백미다.

주요 후보 대외정책

대테러전의 유지연합(coalition of will)을 강조하면서 전통적 동맹 관리는 헝클어졌고, 일국 중심주의에 매달리면서 국제기구와 국제협약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 추동축은 ‘수퍼파워 미국’을 신봉하는 신보수주의자(네오콘)였다. 부시는 2006년 11월 의회선거 패배 후 현실주의로 돌아섰다. 2002년 ‘악의 축’으로 지목한 북한·이란과의 대화를 재개했고, 뒤늦게 중동평화 협상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그럼에도 부시 행정부 8년의 대외정책 기조는 일방주의로 요약된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ABB(Anything But Bush·부시 정책은 하지 않는다)라는 신조어가 생길지도 모른다. 부시 행정부의 ABC(Anything But Clinton)와 같은 현상이 재현될 수 있다. 이는 대선 후보들의 국제관계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확인된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신랄하다. “지난 6년간의 비극은 부시 행정부가 가장 가까운 동맹국과 우호국의 존경과 신뢰조차 탕진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일련의 허위 선택을 국민에게 제시했다. 힘 대 외교, 일방주의 대 다자주의, 하드파워 대 소프트파워다. 이 선택들을 서로 배타적으로 본 것은 이념적으로 편협한 세계관을 반영한다. 미국은 다자주의를 우선해야 한다.

일방주의는 우리의 안보를 보장하고 비극을 피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의 선택이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도 마찬가지다. “부시 행정부는 과거의 재래식 사고방식으로 비재래식 9·11테러에 대응했다.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보고 군사적 해결책을 따랐다. 미국은 홀로 이 세기의 위협에 대처할 수 없다.

정치·경제·군사적 힘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외교가 적을 다룰 때 성공을 가져올 수 있다.” 두 후보 가운데 누가 집권해도 대외정책 기조 변화는 불가피하다. 국제 협조주의로 돌아설 것이다. 공화당 후보가 집권해도 기조에는 적잖은 변화가 생길 듯하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부시 행정부보다 이란·중국 정책 등 개별 정책에서 더 강경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국제 협조주의와 동맹 강화를 강조한다.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주지사는 대외정책의 신사고를 내세운다. 미국 내 신보주의자와 현실주의자 간의 벽 허물기와 동맹 강화다. 두 후보 모두 부시 행정부보다는 일방주의적 색채가 약하다.

아시아 정책은 후보마다 큰 차이가 있다. 힐러리의 중심은 중국에 가 있다. “중국과의 관계는 금세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치와 정치체제는 다르지만 양국이 함께 이뤄야 하고 이룰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입장이다. 힐러리는 북한 핵시설 불능화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 역할도 높이 평가했다. 그 다음으로 중요도가 있다고 한 나라는 인도다.

한·미 동맹이나 미·일 동맹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대테러전 등에서 협력해야 할 나라로 호주와 인도·일본을 적시했다. 미·일 동맹을 아시아 정책의 축으로 삼고 한때 중국을 전략적 경쟁국으로 자리매김했던 부시 행정부와는 딴판이다. 일본에서 포린 어페어스 기고를 두고 비명이 나올 만도 하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 2기 때 8박9일 동안 중국을 방문하면서 일본에 들르지 않은 ‘일본 제치기(Japan passing)’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힐러리가 집권하면 한·미 동맹의 위상도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 가뜩이나 한·미 동맹은 냉전 붕괴 이후 중요도가 떨어지고 있다. 힐러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쪽이다.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대로라면 베이징의 프리즘을 통해 서울과 도쿄를 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동북아 안보문제에 대한 힐러리의 비전은 안보협의체 창설이다. 2005년의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맞닿아 있는 구상이다. 북핵 문제는 협상으로 해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무부가 외교로 돌아왔기 때문에 미국은 뒤늦게 진전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적과의 대화’는 힐러리의 일관된 입장이기도 하다.

오바마의 아시아 정책도 동맹 중시가 아니다. 한·미 동맹이나 미·일 동맹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동북아에서 양자 간 협정이나 정상회담, 6자회담을 넘는 새 틀의 창설을 강조했다. 중국에 대해선 책임 있는 역할을 권고할 것이라고 했다. 사안에 따라 협력하고 경쟁하겠다고 덧붙였다. 부시 행정부 2기 때의 ‘책임 있는 이해상관자(stakeholder)’를 연상시킨다. 오바마는 핵 비확산에 대해선 아주 강경하다.

핵무기 확산을 미국의 안보에 대한 가장 긴급한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그 연장선에서 북한의 핵프로그램 제거와 이란의 핵무기 획득 저지를 위해 강력한 국제적 연합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란과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첫 조치는 지속적이고, 직접적이며, 공세적인 외교가 되겠지만 군사적 대응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매케인의 아시아 정책은 부시 행정부와 흡사하다. 일본이 기축이다. “글로벌 파워로서 일본의 국제적 리더십과 부상을 환영하고 일본의 ‘가치에 바탕을 둔 동맹’ 주창을 권장하며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일본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국 안보 파트너십을 제도화하겠다는 생각이다. 한국은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경제·안보 협력을 통해 금이 간 파트너십을 재건하고 FTA 잠재력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정책기조는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 간 협력체인 민주주의 연맹(League of Democracies) 창설 구상과 맞물려 있는 듯하다.

반면 대중 정책은 강경하다. 군사력 증강의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중국이 대만을 위협하면 미국은 주시하겠다고 했다. 중국이 미국을 뺀 지역 포럼이나 경제적 틀을 꾀하면 대응하겠다고 못박았다. 대북 정책도 강경 일변도다. “북한과의 외교적 합의를 위해선 검증 가능한 비핵화와 모든 핵물질·시설의 신고가 필요하며, 대북 협상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일본인 납치,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 확산 지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롬니는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이렇다 할 아시아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이라크 정책에 대해선 힐러리·오바마가 미군의 조기 철수를 주장하는 데 반해 매케인·롬니는 그에 반대하고 있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 회장은 “이라크 정세가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이란이 핵무기 개발 활동을 중지했다는 국가정보평가(NIE)로 미국·이란 간 전쟁 가능성이 줄면서 경기 침제와 일자리 감소 등 경제가 대외정책을 압도하고 있다”고 대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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