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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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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두려움 그 자체뿐이다."

1933년 3월 4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한 말이다. 당시 미국인들은 대공황의 구렁텅이에서 희망과 자신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1929~32년 중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0% 이상 감소했다. 물가 가 크게 떨어져 명목 GDP는 반토막이 난 상태였다.

미국인들은 미래엔 생활이 더 비참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때문에 루스벨트는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데 연설의 초점을 맞췄다. 그는 취임식 전날 4시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연설문 원고를 다듬었다. '두려워해야 할…'이라는 문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작품에서 따와 막판에 그가 직접 써넣었다. 비전과 의지만 있으면 불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에서다.

원고에는 또 이런 구절도 넣었다.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다."

고용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선언한 것이다. 귀에 확 들어오는 단순명료한 메시지였다.

루스벨트는 취임하자마자 뉴딜 정책을 밀어붙였다. 기존의 자유방임형 경제에서 벗어나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선언했다. 뉴딜 정책을 실시한 지 4년 만에 미국의 실질 GDP는 대공황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됐다. 새로 생겨난 일자리도 600만개에 달했다.

그가 두번째 임기에 도전한 36년엔 선거유세에서 경제적인 업적을 전면에 내세웠다. 자신감도 넘쳤다. 그래서인지 그의 연설은 취임 때에 비해 다소 거칠어졌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래도 청중들은 그의 말에 환호했다.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행한 막판 유세에서 그는 "계속 팔을 걷어붙이고 일하겠다"고 외쳤다. 계속 잘 살게 해주겠다는 말 이외엔 거창한 슬로건이나 화려한 표현이 필요없었던 것이다. 선거 결과 그는 48개주에서 승리를 거뒀다.

미국의 정치평론가들은 루스벨트의 연설 중 첫번째 취임연설을 최고로 꼽는다. 그의 비전과 의지가 명확하게 담기면서 강한 호소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대통령 선거에서 세번 더 승리한 비결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우리의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도 그 같은 비전과 의지가 아닐까.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