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목놓아 부르지 못한 시인 이육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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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천고(千古)의 뒤에/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의 시 '광야' 중)

올해는 '민족 시인' 이육사(1904~44)가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다채로운 기념 행사가 마련된 가운데 KBS-1 TV는 1일 오후 7시30분 '초인이여 광야를 노래하라'란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 85돌을 맞는 3.1절에, 육사의 일생을 통해 조국애란 무엇인지 되새김질해 보자는 뜻이다.

육사는 퇴계 이황의 14대손(孫)이다. 실리보다는 의(義)를 추구하는 선비정신은 그가 평생 독립운동에 매진하는 채찍이 됐다. 일본 유학 시절 그는 조국의 참담한 현실을 깨닫고 조국의 독립에 일생을 걸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이름이 처음부터 '陸史(땅 륙, 역사 사)'는 아니었다. 고난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이름의 변천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본명이 이원록이었던 그가 이육사로 개명한 건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류돼 처음 투옥됐을 당시의 수인(囚人)번호가 264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처음 이 이름을 사용했을 땐 일제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담아 죽일 륙, 역사 사의 육사(戮史)로 썼다.

이번 방송에선 두 차례 옥고를 치른 육사가 의열단(義烈團)이 만든 조선혁명 군사정치간부학교 제1기생으로 입교하는 과정, 베이징 주재 일본 영사관에서 4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는 모습 등을 충실히 재현한다. 제작진은 그의 삶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베이징.난징.상하이.광저우 등을 돌며 육사의 흔적을 좇았다.

육사는 수필 '계절의 오행'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언이란 80을 살아도 가을을 경험하지 못한 속인(俗人)들이나 쓰는 것이다. 나는 유언을 쓰지 않겠다. 다만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 약속을 지켰다. 대신 그의 유고(遺稿) '광야'는 사실상 후대에게 주는 그의 유언이 됐다. '다시 천고 뒤에 백마 타고' 올 초인을 위해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고 간 것이다.

제작진은 "취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이육사는 조국 사랑이 누구보다 철저했던 사람"이라며 "격동의 시기를 살았던 그의 아픔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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