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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浮沈의전말>4.몰락과정과 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부도직전까지도 신흥대기업으로 주목받던 덕산은 상식을 벗어난 기업인수와 방만한 경영 때문에 일순간에 무너졌다.
박성섭(朴誠燮.47)회장은 가중되는 자금난을「큰손」인 어머니정애리시(鄭愛利施.71)씨에게 기대려 했으나 鄭씨는 갑자기 물러서고 말았다.
덕산의 주무대인 광주와 전남지역에서는 일찌감치 덕산이 자산평가나 투자가치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무모하게 부실기업등을사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덕산은 지난해 11월 부채가 1천억원에 이르러 누구도 인수하기를 꺼렸던 무등건설을 업주에게 50억원의 프리미엄을 얹어주고인수해 업계와 지역주민을 놀라게 했다.
또 레미콘 업체를 인수하는 과정에서는 경쟁업체를 따돌리기 위해 원매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치고들어가는 수법을 동원하기도 했다.이같은 상식밖의 기업확장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해부로,그 역할을 맡은 곳은 서울본부의 경영정책실.
전체 50여명중 40여명이 朴회장의 경기고.서울대 동창으로 짜여진 경영정책실이 이처럼 부실기업을 마구잡이로 인수하거나 신규 프로젝트를 만들어 회사를 설립하자 광주의 관련업계에서는『뭔가 이상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경영정책실은 무등건설 인수 당시 올해 2월에 아파트분양금등으로 1천8백억원이 들어올 것이라고 분석했으나 실제는 수십억원에지나지 않는등 판단착오를 거듭했다.
그러나 朴회장은『10년안에 30대그룹에 진입하겠다』고 호언하면서 미국 중국 말레이시아등에 지사를 두는등 대기업의 꿈을 향한 행보에 이상이 없는 것처럼 행세했다.
89년 어머니로부터 한국고로시멘트를 넘겨받아 분가한 朴회장은덕산을 5년여만에 27개업체를 거느린 그룹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이중 대부분은 부실기업을 인수하거나 신설한 것이어서 적자를 면치 못했으며 덕산세트랄제약등 1~2개만이 그런대로 수지를 맞춰나가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제2금융권의 돈을 마구 끌어다 써 이자부담이 크고 2천명이 넘는 직원들의 임금만도 월 20억원이상인데다 운영비부담등으로 가중된 적자운영은 덕산을 파멸의 길로 몰고갔다.자금난이심각해지면서 무등건설이 부도위기에 처■자 지난달 7일 朴회장은어머니 鄭씨에게 매달렸다.
鄭씨는 朴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는 조건으로 현금 3백20억원을 지원,위기를 넘기는듯 했으나 20여일만에 鄭씨측의 기습적인 부도 발표로 덕산은 쓰러지고 말았다.
항간에는 鄭씨의 태도돌변의 이유가 朴회장이 경영권포기를 무효화하는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관계가 악화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증권당국의 제재 신호가 고려시멘트에 떨어졌기 때문이라는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현금을 지원하는등 덕산의 구제 노력을 벌이던 고려시멘트는 증권감독원으로부터 자산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액수(2천8백억원)를 지급보증했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鄭씨와 고려시멘트 사장이던 박성현(朴誠賢.37)씨등은 이를 고려시멘트에 대한 금융규제의 신호로 받아들였고 도마뱀 꼬리 자르듯 덕산의 부도를 발표한뒤 법정관리신청을 통해 고려시멘트 보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鄭씨의 비자금 은폐기도 의혹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鄭씨는 고려시멘트가 금융규제를 받으면 제도금융권을 통한 덕산의 지원이 불가능해져 자신의 비자금으로 덕산을 도울 수밖에없고 이렇게 될 경우 은밀하게 관리해온 비자금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아예 덕산 구제노력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이번 사태의 직접피해자들은 물론 광주.전남지역 사람들은 『鄭씨가 수천억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비자금을 외국은행에 도피시킨 것 아니냐』며 당국이 鄭씨측의 재산은닉과 책임문제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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