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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혈사태 치닫는 파키스탄 카라치市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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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끝을 모르고 치달아온 파키스탄 카라치市의 유혈 폭력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8일 아침 카라치 주재 미국 영사관 직원 2명이 출근길에 무장괴한의 총격을 받고 즉사하면서 최근 잇따른 테러로 통제불능의상태에 빠진 이 도시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경계어린 눈길이 일제히 쏠리고 있다.
궁지에 몰린 파키스탄 정부는 대대적인 수색령을 내리고『범인 체포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으나그간베나지르 부토 총리가 중심이 돼「테러국가」의 오명을 벗고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이뤄보려던 노력은 순식간에 물거 품이 돼버렸다. 지난달 라마단(회교도 금식월)기간중에만 1백여명이 목숨을 잃은 카라치는 원래 파키스탄 제1의 상업도시.밀려드는 외국 투자로 파키스탄 경제 기적을 일으킬 중추로 기대를 모으던 이 도시는 수년전부터 회교 반군과 경찰,회교도 과격단체들 사이에 총격전이 난무하며 산업활동이 마비지경에 이르렀다.
지난해 이래 정체를 알 수 없는 총탄에 희생된 인명이 무려 1천여명.카라치 주민들은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들지 몰라 바깥 출입조차 삼가고 있는 상태다.
이같은 폭력사태의 주된 원인은 47년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이주해온 회교도 모하지르人들이 결성한 무장단체 모하지르 쿠아미운동(MQM)과 파키스탄 정부간의 대립이다.
카라치 인구 1천만명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모하지르人들은 부토총리를 비롯한 역대 파키스탄 정권들이 고용.교육등 각종 분야에서 차별정책으로 일관했다며 對정부 투쟁을 선언,경찰과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테러를 감행해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회교 양대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가 결성한과격단체「시파히 사하바 파키스탄」과「테리키 피카 자프리아」의 세력 다툼이 본격화되고 MQM 자체도 양분돼 경찰과 대치하지 않는 날은 자기들끼리 싸움을 벌이는 통에 카라치 는 단 하루도총성이 멎을 날이 없는 형편이다.
카라치내 질서회복 실패에 대한 안팎의 비난에 직면한 부토 총리는 카라치 유혈 사태의 배후에 파키스탄의 안정을 위협하려는 인접국 인도의 간계가 숨어있다고 주장, 카슈미르 지역 귀속권 분쟁.核보유 관련 비방 발언등으로 악화될대로 악화 된 양국 관계에 새로운 불씨를 던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자국민의 목숨을 잃은 미국이『지구상 모든 테러의 씨를말리겠다』며 강경하게 압력을 가해오고 있는 이상 부토 총리도 언제까지나 인도 핑계를 대며 수수방관할수는 없을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시시각각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카라치 주민들은 차라리 지난해 11월 철수시켰던 군대를 다시 진주시켜서라도 안정을 되찾아달라고 파키스탄정부에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申藝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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