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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생각은…

보육정책 밑그림부터 다시 그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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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국도 어느새 예산 규모로만 보면 보육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2003년 참여정부 출발 당시 총보육예산은 6551억원이었고 그중 중앙정부 예산은 3120억원이었다. 올해는 중앙정부 예산만 1조4178억원이니 불과 5년 사이에 4.5배가 늘어난 것이다. 이토록 엄청난 규모의 국가 예산을 소비하고 있는데, 우리의 보육정책은 정말 잘 가고 있는 것일까? 먼 길을 나서기 전에 다시 한번 신발 끈을 고쳐 매듯 이제까지의 보육정책을 곰곰이 되짚어볼 때다.

주지하는 대로 한국의 보육예산은 정부 지원 보육시설에 다니는 아동의 보육비 지원에 주로 쓰인다. 지원 정도는 일률적이지 않다. 개별 가정의 소득수준 및 아동의 연령과 출생순위, 그리고 장애 유무에 따라 차등적으로 정해진다. 이를테면 법정저소득층(국민기초생활수급자)과 최저생계비 120% 수준까지의 빈곤 계층은 전액 면제,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소득 50% 수준까지는 보육비의 80%를 지원하는 식이다. 거기다 요즘은 아동의 연령이나 탄생 순위도 고려한다. 보육예산이 해마다 늘어나는 것은 그 대상 범위를 점점 더 확대하는 한편 지원 비율도 높이기 때문이다. 이 추세대로 간다면 한국은 2010년께 이미 보육의 총경제비용에 대한 국가분담 비율이 선진국 수준인 60%에 도달할 것으로 예정돼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제 곧 세계가 깜짝 놀랄 보육 선진국이 될 것인가? 안타깝게도 사정은 별로 그렇지 못하다. 필자가 보기는 이는 무엇보다 보육정책의 철학적 가치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탓이다. 보육정책이 추구하는 가치는 보통 두 가지로 압축되는데, 하나는 양성평등의 이념을 뒷받침하기 위한 보육의 공공화 혹은 사회화의 필요이고, 다른 하나는 ‘이 나라에 태어난 어떤 아동이든 그 출발선에서부터 불평등해서는 안 된다’는 아동복지권의 차원이다. 우리의 경우 개별 가정의 경제적 수준이나 가정환경을 고려해 한 아동이 건강하게 자랄 최소한의 조건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토론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대신 한국의 보육정책은 압도적으로 여자들이 일을 나갈 수 있으려면 국가가 아이를 맡아줘야 한다는 관심에 지배돼 왔다.

그 영향으로 구사하는 정책수단도 매우 단순했다. 각국에서 사용하는 보육의 정책수단은 보통 네 가지인데, 조세혜택제도(EITC 프로그램 등), 현금부조 정책(아동수당 등), 보육서비스 정책, 그리고 노동시장 정책(육아휴직 제도 등)들이 그것이다. 이 중 보육시설비 지원은 보육서비스 지원정책의 한 종류일 뿐인데, 한국은 그 이외의 정책수단들을 아주 등한시해 왔던 것이다. 덕분에 한국은 국가가 아무리 돈을 써도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내지 않는 한 아무 혜택이 없는 나라가 돼 버렸다. 저소득 가정이라 하더라도 보육시설에 보내는 아동은 전체 대상 아동의 절반이 안 된다. 국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많은 가정이 사실은 보육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동안 한국의 보육정책 토론장은 ‘보육시장 자율화’ 대 ‘보육의 공공성’이라는 좁은 논쟁구도에 갇혀 있었다. 보육비 지원이라는 정책수단을 전제한 채 시장과 공공부문의 역할 분담 문제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육을 위한 개별 가정의 정책적 수요는 소득수준이나 직업적 특성, 문화적 가치 등에 따라 차이가 난다. 보통 저소득계층엔 현금부조 및 다면적인 가족서비스 정책이 더 긴요한 정책이다. 고소득계층들은 경제적 부담보다 구매하는 보육서비스의 질이 더 중요한 관심사일 것이다. 각 가정의 필요에 따라 자녀를 돌볼 시기를 선택할 수 있게 하려면 육아휴직제도 및 단시간 근로제와 같은 노동시장 정책이 보다 중요한 문제다. 가족의 계층적·지역적 이해와 생애주기별 특성, 직종별 선호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어떤 입장의 가족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출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이제까지의 보육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보육도 복지의 관점에서 맞춤형 종합서비스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재인 서울대 여성연구소/사회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