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는 대로 한국의 보육예산은 정부 지원 보육시설에 다니는 아동의 보육비 지원에 주로 쓰인다. 지원 정도는 일률적이지 않다. 개별 가정의 소득수준 및 아동의 연령과 출생순위, 그리고 장애 유무에 따라 차등적으로 정해진다. 이를테면 법정저소득층(국민기초생활수급자)과 최저생계비 120% 수준까지의 빈곤 계층은 전액 면제,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소득 50% 수준까지는 보육비의 80%를 지원하는 식이다. 거기다 요즘은 아동의 연령이나 탄생 순위도 고려한다. 보육예산이 해마다 늘어나는 것은 그 대상 범위를 점점 더 확대하는 한편 지원 비율도 높이기 때문이다. 이 추세대로 간다면 한국은 2010년께 이미 보육의 총경제비용에 대한 국가분담 비율이 선진국 수준인 60%에 도달할 것으로 예정돼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제 곧 세계가 깜짝 놀랄 보육 선진국이 될 것인가? 안타깝게도 사정은 별로 그렇지 못하다. 필자가 보기는 이는 무엇보다 보육정책의 철학적 가치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탓이다. 보육정책이 추구하는 가치는 보통 두 가지로 압축되는데, 하나는 양성평등의 이념을 뒷받침하기 위한 보육의 공공화 혹은 사회화의 필요이고, 다른 하나는 ‘이 나라에 태어난 어떤 아동이든 그 출발선에서부터 불평등해서는 안 된다’는 아동복지권의 차원이다. 우리의 경우 개별 가정의 경제적 수준이나 가정환경을 고려해 한 아동이 건강하게 자랄 최소한의 조건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토론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대신 한국의 보육정책은 압도적으로 여자들이 일을 나갈 수 있으려면 국가가 아이를 맡아줘야 한다는 관심에 지배돼 왔다.
그 영향으로 구사하는 정책수단도 매우 단순했다. 각국에서 사용하는 보육의 정책수단은 보통 네 가지인데, 조세혜택제도(EITC 프로그램 등), 현금부조 정책(아동수당 등), 보육서비스 정책, 그리고 노동시장 정책(육아휴직 제도 등)들이 그것이다. 이 중 보육시설비 지원은 보육서비스 지원정책의 한 종류일 뿐인데, 한국은 그 이외의 정책수단들을 아주 등한시해 왔던 것이다. 덕분에 한국은 국가가 아무리 돈을 써도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내지 않는 한 아무 혜택이 없는 나라가 돼 버렸다. 저소득 가정이라 하더라도 보육시설에 보내는 아동은 전체 대상 아동의 절반이 안 된다. 국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많은 가정이 사실은 보육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동안 한국의 보육정책 토론장은 ‘보육시장 자율화’ 대 ‘보육의 공공성’이라는 좁은 논쟁구도에 갇혀 있었다. 보육비 지원이라는 정책수단을 전제한 채 시장과 공공부문의 역할 분담 문제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육을 위한 개별 가정의 정책적 수요는 소득수준이나 직업적 특성, 문화적 가치 등에 따라 차이가 난다. 보통 저소득계층엔 현금부조 및 다면적인 가족서비스 정책이 더 긴요한 정책이다. 고소득계층들은 경제적 부담보다 구매하는 보육서비스의 질이 더 중요한 관심사일 것이다. 각 가정의 필요에 따라 자녀를 돌볼 시기를 선택할 수 있게 하려면 육아휴직제도 및 단시간 근로제와 같은 노동시장 정책이 보다 중요한 문제다. 가족의 계층적·지역적 이해와 생애주기별 특성, 직종별 선호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어떤 입장의 가족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출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이제까지의 보육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보육도 복지의 관점에서 맞춤형 종합서비스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재인 서울대 여성연구소/사회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