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XP, 구관이 명관이더라 … 윈도 비스타는 느림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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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말 미국 뉴욕의 한 빌딩에서 16명의 곡예팀이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새로운 운영체제인 윈도 비스타를 홍보하기 위해 윈도 비스타 로고를 몸으로 만들어 보였다. [중앙포토]

마이크로소프트(MS)가 지난해 1월 30일 야심 차게 내놓은 차세대 컴퓨터 운영체제(OS) 윈도 비스타가 국내 PC시장에 뿌리를 못 내리고 있다. 일부 소비자가 ‘속도가 느리다’며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용량을 차지해 컴퓨터가 속도를 내는 데 부담이 되는 보안·동영상 프로그램 등이 잔뜩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윈도 비스타가 깔린 PC를 산 지 며칠도 안 돼 ‘다운그레이드(업그레이드의 반대말)’해 달라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윈도 비스타를 빼 달라는 요구다.

다운그레이드도 공짜로 할 수 없다. 주요 PC 판매사가 그 비용을 따로 받거나 “윈도XP 정품 CD를 사오라”고 요구해 인터넷에는 윈도XP의 해적판인 일명 ‘블랙 에디션’이 나돌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PC의 80% 이상이 윈도 비스타 OS를 탑재한 만큼 다운그레이드를 원하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테크노마트 PC 판매점 ‘모름지기’의 김완수 팀장은 “윈도 비스타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PC의 메모리와 중앙처리장치(CPU) 용량이 최소 1기가씩은 돼야 하고 게임을 즐기려면 2기가는 돼야 안심”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거래가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윈도 비스타가 탑재된 PC로 증권 거래, 온라인 결제, 인터넷 뱅킹을 하려면 자주 오류가 빚어진다는 것이다. 아직 일부 금융·결제업체들이 자사 시스템을 윈도 비스타에 맞게 개조하지 않은 탓이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 기업 중 윈도 비스타를 회사의 공식 OS로 정한 곳은 한 곳도 없다. 기존 윈도XP 체제에 맞도록 만들어진 각종 보안·오피스·게임 프로그램과 호환이 안 되는 것도 비스타의 단점으로 꼽힌다. 사정이 이렇자 MS는 지난해 말 단종하기로 했던 윈도XP의 판매를 올 6월 말까지 연장했다.

한편 최근 MS의 세계 OS시장 점유율은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고 애플사가 두 달 전 내놓은 매킨토시 OS의 최신 버전 ‘레오파드’는 “쉽고 빠르다”는 소비자의 호평을 받으며 점유율을 늘려 가고 있다. 미국의 정보통신 전문지 ‘컴퓨터월드’ 인터넷판은 최근 시장조사업체 ‘넷 어플리케이션스’의 통계를 인용해 “애플 OS의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12월 31일에는 8% 선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MS코리아의 안자현 차장은 “윈도 비스타에 대한 고객 반응이 좋아지고 있으며 ‘다운그레이드’ 규모도 최근 줄고 있다”고 말했다.

이나리 기자

◇컴퓨터 운영체제(OS)=컴퓨터를 운영하기 위한 기본 시스템을 말한다. 사용자가 컴퓨터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각종 프로그램들로 구성돼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1981년 자사가 개발한 OS인 ‘도스(DOS)’를 IBM PC에 탑재하면서 일약 세계적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떠올랐다. 이어 85년 그래픽 사용자 환경을 도입한 윈도(WINDOW)를 개발하면서 컴퓨터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윈도 비스타는 윈도 시리즈의 다섯 번째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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