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슈퍼맨 … ’으로 2년 만에 영화 나들이 전지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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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27)이 돌아왔다.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31일 개봉)는 ‘데이지’ 이후 2년 만의 신작. 그 사이 미국·홍콩·프랑스가 합작한 액션물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촬영을 끝냈다. 광고로야 자주 만나왔지만, 이미지가 아닌 ‘전지현’은 속내가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배우다. 인터뷰도, TV 출연도 흔치 않다. 영상으로 만나온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터라, 마주 앉은 자리에 화장기 거의 없는 속칭 ‘생얼’로 나온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생얼’의 이유는 물론 배역을 염두에 둔 것. 나중에 영화를 보고 “완후(완전후회)였다”지만, 줄담배와 과로에 절어 사는 다큐PD 역할을 “이래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스스로 수퍼맨이라고 믿으면서 일상에서 착한 일을 하는 남자(황정민)의 이야기다. 전지현은 휴먼다큐의 세계에 질릴 대로 질린, 그래서 수퍼맨의 선행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PD 송수정 역할이다. ‘엽기적인 그녀’(2001년) 이후 여성 캐릭터, 특히 여배우 전지현의 이미지가 앞서는 영화에 주로 나왔던 것에 비하면 좀 다른 선택이다. “내가 물이라면, 그래서 이 컵에 멈출 수 없이 쏟아 붓는 연기를 해왔다면, 이번에는 컵에 맞춰서 주고받는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소개한다.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서 호흡을 맞춘 황정민(右)과 전지현.

“평생 여배우로 살아갈 텐데, 배우라는 직업이 표현하는 일이잖아요. 누구나 살면서 느끼는 게 많은데, 그걸 표현하는 일이니 배우가 행운이고 복이라고 생각해요. 조급함은 없어요. 지금도 좋고, 앞으로도 더 좋아지겠지요, 평소 ‘잘 살면’ 된다고 봐요.”

그녀의 ‘잘 살기’는 규칙적인 생활, 또는 거기에 담긴 평정심을 뜻하는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운동하고, 하고 싶은 공부하고(영어공부를 꾸준히 해왔다), 그렇게 잘 사는 게 새로 맡을 캐릭터를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고, 저를 통해 표현될 캐릭터를 걸림 없이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하고.”

평생 직업으로 배우를 생각하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촬영현장이 아니라 영화와 영화 사이, 잠시 쉬고 있던 순간을 꼽는다. “대학교 때 집에 돌아오다가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고, 영화 ‘괴물’을 보면서도 그랬어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데, 내가 떨리더라고요. 영화 속 대사를 나도 모르게 내가 해보고. 지난해라면 내가 저런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을 텐데, 지금도 또 이렇게 표현할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먼저 촬영한 영화’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는 육체적으로 퍽 고된 현장으로 알려져 있다.

“너무 힘들었어요. 하기 전에는 액션 하면서 감정연기를 하는 최초의 배우가 되겠다고 했는데, 하다 보니까 왜 액션배우가 표정연기를 하기 힘든지 알았어요. 숙련된 스태프(홍콩 출신)가 아니었다면 더 힘들었겠죠.”

이후 그녀를 영화 ‘슈퍼맨…’에 유혹한 것은 시나리오와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 상대 배우 황정민이라는 요소였다. 황정민? “자기 것만 아니라 상대 배우의 연기까지 볼 줄 아는 배우예요. 지적을 해주는 게 맞는 말이 아니면 비아냥처럼 들렸을 텐데, 정말 정확하고, 고마웠어요. 최고의 상대 배우지요.” 정윤철? “현장에서 제가 브로(brother)”라고 불렀어요. 기분 나쁠 법한 얘기도 기분 나쁘지 않게 해주는 큰오빠 같았지요.”

영화에 아쉬움도 있다. 영화 속 수퍼맨의 선행과 그의 인생역정에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부터 온갖 사회적 캠페인이 될 법한 일이 어느 순간 감당하기 힘들 만큼 쏟아져 나온다. “시나리오에서는 너무 가볍지 않은 점이 좋았는데, 영화를 보고 너무 많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수퍼맨은 옛날 사람이고, 수정이는 요즘 사람”이란 캐릭터 해석이다. “수퍼맨이 하는 게 딱히 착한 일이라기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요즘 사람들은 바쁘고 어색해서 그냥 지나가는 일들이잖아요. 저도 마찬가지로 요즘 사람이고요. 수정이는 관객이 궁금해하는 것, 생각하는 것을 대신 표현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돌아보니 이 여배우, 1997년 데뷔 이후 만 10년이다. 10년? 물끄러미 생각하는 눈빛이 되더니 엉뚱한 답을 내놓는다. “사람들이 자주 생각하지 않을 걸 물어보면 한참을 생각하잖아요. 예컨대, 지금 행복하세요, 행복하기 위해 뭘 하세요, 같은 질문에 바로 대답을 못하잖아요. 저는 그런 질문을 많이 해봐요.” 스스로 ‘10년’에 별 의미를 둔 적이 없다는, 다시 말해 지나간 날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그보다 앞날을 더 많이 생각한다는 얘기다. 그 자신감 그대로, 좀 더 일상으로 다가왔으면 싶었다.

글=이후남,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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