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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손엔 소주 한손엔 아이 ‘엄마가 술독에 빠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알콜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여성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술 광고에 이효리·남상미 등 여성 스타들이 인기를 끈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성들이 술 시장에서 점유하는 비율이 늘어난 현실을 발 빠르게 반영한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 실제로 밤거리에서 술에 취해 비틀대는 여성들의 빈도가 늘어난 것은 누구나 느끼는 상황이다.

직장 여성들이 늘면서 여성들이 술에 쉽게 접근하게 된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와중에 여성 알콜 중독이라는 뜻하지 않은 문제가 사회 문제화하고 있다. 여성 알콜 중독은 남성에 비해 진행 속도가 배 이상 빠르고 발견은 늦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더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한 조사에 의하면 알콜 중독자 가운데 20%가 여성이며, 직장 여성들 가운데 35%가 술을 마신 후 블랙아웃(음주 후 기억이 끊기는 현상)을 경험했다는 통계가 있다. 이 가운데 무려 4%는 정기적으로 블랙아웃을 경험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블랙아웃은 처음에는 빈도수가 적다가 나중에는 시간이 점점 좁아지면서 빈번하게 발생하므로 블랙아웃이 일단 왔다는 사실은 정도가 심각함을 경고하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불임이나 유방암은 물론 태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쳐 기형아를 낳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알콜 중독은 더 이상 방기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난해 11월, 술에 취한 30대 아내 이모씨가 남편을 칼로 찌른 사건이 발생했다. 평소 술에 빠져 지내는 아내를 보다 못한 남편이 그만 마시라고 막자 순간적으로 격분한 이씨가 남편을 칼로 찌른 사건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남편이 찔린 곳은 심장 바로 옆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그 사건이 두 부부의 마지막 인연이 되고 말았다.

여성의 경우 태아 알콜 증후군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알콜 중독은 더욱 경계 대상이다. 태아 알콜 증후군은 대부분 안면 기형과 선천성 심장 기형등을 유발하는 데 부모의 잘못으로 자식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여기에 인지 장애까지 수반된다. 두 아이가 모두 태아 알콜 증후군을 겪고 있는 주부 정모씨는 "남의 물건을 만지면 안된다는 얘기를 수없이 했지만 매번 반복이 돼요. 제 정신이 아닌 엄마하고 사니까 받은 것이 아무 것도 없죠. 그 부분이 제일 마음에 걸려요"라고 후회하지만 엎어진 물일 뿐이다.

역시 한 살 배기와 세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모(27)씨도 하루에 소주 2~3병, 일주일에 4~5일을 술에 의지하고 사는 전형적 알콜 중독자다. 시댁과 남편과 갈등 때문에 이혼을 바랐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이씨는 술을 마실 때마다 블랙아웃을 경험하고 있다.

아이를 안은 채 술을 마시는 광경도 다반사다. 병원에서 2시간여에 걸친 알콜 중독 검사를 받은 결과 34점(25점 이상이면 알콜 중독으로 최대치는 40점)으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알콜 중독에 빠져드는 원인은 성장하면서 부모에게 받은 상처와 폭력, 아머지와 어머니가 술 문제 때문에 빠졌던 문제를 반복하는 것,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는 데서 오는 정신적 공허함이나 우울증 등 가족 간의 갈등이나 문제가 주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소재 알콜 중독 치료 A 전문 병원의 경우 40여 명의 여성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30~40대 여성으로 집중 치료를 받고 있지만 완쾌돼서 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박수성 기자 [mercury@ilgan.co.kr]

※기사 관련 TV 프로그램인 중앙방송 Q채널 ‘천일야화’의 ‘벗어나고 싶은 여자들… 여성 알콜 중독' 편이 28일 밤 12시에 방영됩니다.
※취재 후기는 isplus.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작 후기

“선배, 나 오늘 회사 송년회가 있어서 좀 늦게 들어갈 거 같아.”

결혼 1년 차 아내는 아직까지 나를 선배라 부르니 우리는 풋풋한 신혼부부라 할 만하다. 연말연시를 맞아 연이은 술자리들이 아내의 발목을 붙잡은 모양이다. 술자리 시간은 길어지고 평소에는 잘 마시지 않는 술을, 그것도 그날 따라 폭탄주 몇 잔을 마신 모양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날 이후 계속 속이 안 좋다고 해서 불안한 마음에 임신 테스트를 해 보니 아주 선명하게 두 줄이 나왔다. 나와 아내는 너무나 놀랐고 기뻤다.

하지만 송년회 때 먹은 술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걱정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그때부터 인터넷과 책을 통해서 술이 임신에 얼마나 안 좋은지를 닥치는 대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알콜 중독이 여성에게 얼마나 치명적이고 헤어나기 힘든 병인지를 알게 되면서 이번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되었다.

많은 여성들을 만났다.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건강과 가족을 잃었다는 알콜 중독 10년 차 주부, 벗어나기 힘든 자신의 과거 때문에 극심한 우울증과 폭주를 일삼는 20대 후반의 여성,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태아 알콜 증후군을 가진 두 아이의 엄마. 이들은 모두 술에서,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리고 아주 소박한 바람을 전해 왔다. “술을 끊으면 밝게 살 수 있나요? 행복할 수 만 있다면 꼭 끊고 싶어요”라고….

마지막으로 이 프로그램을 마치면서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기가 건강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마지막으로 전한다. “사랑한다~, 나무야!” 김영조 PD

[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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