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균의 뇌 이야기] 그런 세상이 오겠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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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35면

때는 3012년, 시내의 한 박물관에는 인류의 역사에 대한 전시가 한창이다. 앞쪽에는 유인원의 실물 모형과 뇌가 자리하고 있다. 호모 에렉투스·호모 사피엔스를 거쳐 21세기 인간의 뇌도 보인다. 수십만 년을 거치며 뇌 표면의 구불구불한 고랑과 이랑은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졌으며, 뇌의 크기는 점점 증가하였다. 전시의 마지막 코너에는 31세기 인간의 뇌가 전시되어 있다. 첫 번째로 소개된 뇌의 형태는 ‘수퍼맨의 뇌’다. ‘원색 계열의 몸에 딱 붙는 옷을 좋아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음’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 바로 옆에는 ‘원더우먼의 뇌’도 있다. 역시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기를, ‘수퍼맨의 뇌에 맞서고 싶은 여성들을 위한 뇌’라고 소개되어 있다. 사람들을 조용히 안내하던 로봇 안내원이 한마디 덧붙인다. 이 뇌들은 31세기를 맞아 특별히 제작된 맞춤식 ‘뇌’이며, 원하는 경우 얼마든지 자신의 뇌와 교환이 가능하다고.

이 글을 읽고 빨리 그런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컴퓨터의 램을 업그레이드하듯이 뇌의 기억메모리를 늘리고 뇌를 바꿔치기함으로써 원하는 능력을 자유자재로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정말이지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1968년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장엄한 선율과 함께 인류 역사의 새벽을 보여준다. 인류의 조상은 주변의 사물을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문명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수십만 년이 지나 거대한 우주정거장과 우주왕복선으로 지구 밖의 무한지대를 자유롭게 왕래하기에 이른다. 이미 2008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한 얘기들은 그저 그런 이야기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유인원들에게 ‘내가 너희의 미래다’라고 말한다면, 다들 웃기지 말라며 코웃음을 칠 게 뻔하다. 우리가 SF 영화를 보며 ‘설마 그런 세상이 오겠어’라고 의심하는 것처럼 말이다.

2005년 BBC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한 신경마비 환자에게 두뇌 칩을 장착해 생각만으로 TV를 켜고 끌 수 있으며 인공팔을 통해 물건을 집어 올릴 수도 있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소식이 두뇌의 200억 개 신경세포들을 모두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단순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수행하게 되기까지는 복잡한 신경회로가 관여되기 때문이다. 일선에서는 이러한 신경기제의 원리를 밝혀내고자 뇌의 신경회로를 3차원 시뮬레이션으로 만드는 모델링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스위스 신경과학자들과 IBM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이 프로젝트는 수퍼컴퓨터 ‘Blue Gene’을 이용해 신경피질회로의 지도를 만들고자 한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실현된다면, 뇌가 어떻게 기능하고 발달해 가는지를 알고자 할 때 간단히 지도를 펼쳐 들고 길을 찾아가면 될 일이다. 물론 장기간의 고된 연구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이러한 노력이 수퍼브레인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에 한 걸음 다가서게 할 것임에는 분명하다.

20세기의 과학자들은 쥐·고양이·원숭이의 뇌를 직접 관찰하며 인간 뇌의 신경기제를 유추해왔다. 먼 훗날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 모형을 똑같이 재현해내 질병의 발달이나 치료 연구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뇌의 표면적인 진화는 수만 년 전에 멈추었을지라도 생각의 진화(Evolution)는 시공을 초월하여 혁명(Revolution)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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