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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주방장, 요리를 말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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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34면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어달라고 주문했다. 누구든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아서다. 그래도 계속 양팔을 끼고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 요리사가 헤픈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며 더욱 단호하다. 이제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스타인데 웃는 얼굴로 찍자며 재차 웃을 걸 요구했다. “저는 스타가 아니거든요. 요리사일 뿐입니다.”

인터뷰 중간에 이런 말을 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남들처럼 “일 다녀올게” “회사 갔다 올게”라고 하지 않는다고. 대신 “요리하고 올게”라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인사한다고 했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싱거운 답이 돌아왔다. “저에게 요리는 일이 아닙니다. 좋아하는 것을 일이라고 표현하기 싫거든요.”

처음 만나 악수를 하는데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발음과 억양이 완벽해 깜짝 놀랐다. 그러곤 우리나라에 자주 오갔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틀렸다. 비행기 갈아탈 때 인천공항에 잠시 내린 경험밖에 없단다. “저의 레스토랑에 한국 손님도 자주 오거든요. 그들을 위해 인터넷으로 몇 마디 외웠어요.”

1 “요리는 일이 아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이다”라고 말하는 주방장 와타나베 유우이치로 2 2007 도쿄판『미슐랭』가이드에서★★★ 를 받은 에비스 가든플레이스의 ‘조엘 로부숑’ 레스토랑 3 미식가들이 선택한 와타나베 유우이치로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내부

도쿄판 『미슐랭』가이드에서 별(★)점 셋을 받은 에비스 가든플레이스 ‘조엘 로부숑(Jeol Robuchon)’ 레스토랑의 일본인 주방장 와타나베 유우이치로(渡邊雄一郞). 이달 중순 그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잔뜩 기대를 걸었다. 미슐랭 발표 후 손님이 몰려 예약조차 어려운 레스토랑의 음식을 맛볼 수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질 않았다. 손님이 없는 휴식시간에 짬을 내 인터뷰만 했다. 덤으로 레스토랑 내부만 살짝 보여줬다. 시쳇말로 김이 팍 샜다. 요리 맛도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요리세계를 풀어간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에게 빠져들었다. 요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요리사로서의 확고한 자긍심. 그것은 ‘와타나베의 요리 철학’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요리사의 꿈은 언제부터 키웠나.

어머니가 요리를 무척 좋아해 어릴 적부터 요리책이랑 TV 요리방송을 편안하게 접하면서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엔 요리만화책에 나오던 장면을 흉내 내기도 했다. 물이 담긴 세면기에 오이를 띄워놓고 칼로 물에 파문이 나게 자르기 등이다. 초등학교 졸업 문집에 요리사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글을 본 선생님이 “요리사는 별로 근사하지 않아”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요리사의 길에 들어서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 때마다 그 말씀이 자극제가 됐다.

요리사가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

실은 중ㆍ고등학교에서 야구를 했다. 포지션은 1루수. 중학교 땐 주장으로 전국대회까지 나갔다. 지옥과 같은 동계훈련도 겪으면서 어른이 되면 체육교사가 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대학교 재수를 할 때 부모님 몰래 신칸센을 타고 오사카의 쓰지조리사전문학교의 일일 체험요리에 참여한 게 요리사의 첫발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오믈렛을 만들었는데 지도교사가 “너, 어디서 일하고 있니?”라고 물었다. 그 칭찬을 듣고 바로 입학 지원서를 냈다. 억지로 ‘사후결재’했던 아버지가 “그 당시 너의 눈이 너무 초롱초롱해 도저히 말릴 수 없었다”고 했다.

많은 요리 중 프랑스요리를 택한 이유는.

나는 왼손잡이다. 그런데 일식 요리는 조리용 칼부터 외날로 시스템 자체가 모두 오른손잡이에 맞춰져 있다. 서양요리는 왼손잡이 셰프도 많고, 부엌칼도 양날이라 왼손잡이도 불편한 게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요리가 서양요리라서 택했다. 초년병 시절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주방식구들 식사로 중국 요리인 닭고기 찜을 한 적이 있는데, 맛있게 먹고 난 주방장이 “너, 프랑스 요리 그만둬라. 장래가 촉망되니 중식으로 바꿔라”고 진지하게 조언해준 적이 있다. 칭찬은 몹시 고마웠지만 한동안 머리가 복잡했다.

‘맛있는 요리’란 무엇인가.

만든 나 역시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리다. 그런 음식은 손님도 먹고 반드시 기뻐한다.

레스토랑 주방에서의 요리는 무척 힘든 작업인 듯하다.

그렇다. 주방에서의 요리는 단체 운동경기와 비슷하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면, 상대에게 더블 플레이하기 쉬운 위치에 공을 던져줄 수 있어야 한다.

‘훌륭한 요리사’는 어떤 사람인가.

팀워크를 맞출 줄 알아야 한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실력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더불어 사회인의 기본자세를 갖추고, 강한 프로의식이 있어야 한다. 특히 서른 살이 넘으면 주변에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진다. 가르쳐주던 사람도 평가자로 돌아선다. 그래서 30세 전에 철저한 프로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후배들의 모델이 된다는 자세로 항상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레스토랑 ‘조엘 로부숑’은 어떤 곳인가.

상호는 현대식 프랑스 요리의 대가로 꼽히는 조엘 로부숑의 이름이다. 1981년 파리에 레스토랑 ‘자맹(Jamin)’을 열었는데 그해 바로 미슐랭 별점 하나를 얻고, 매년 하나씩 추가해 세계 역사상 최단기간인 3년 만에 ‘별 셋’에 올랐다. 현재 파리ㆍ도쿄ㆍ런던ㆍ모나코ㆍ뉴욕ㆍ라스베이거스 등지에 10여 개의 레스토랑이 있다. 에비스 가든플레이스 매장도 그중 하나다.

조엘 로부숑과의 인연은 언제 시작됐나.

오사카 쓰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때 용돈을 모아 ‘자맹’의 음식을 먹어봤는데 충격 그 자체였다. 젤리와 캐비아(철갑상어알)로 만든 요리 등 그때 먹었던 메뉴 하나하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함께 일한 것은 1994년 도쿄 히비야의 ‘타이유방 로부숑’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조엘 로부숑의 요리 철학은 무엇인가.

우선 ‘정밀’과 ‘청결’이다. 주방을 연구소처럼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관리한다. 요리에서는 많은 재료를 혼합하는 걸 거부한다. 그래야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조엘 로부숑과 마찰을 빚은 적은 없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절대적인 스승이다. 매우 엄격하고 까다롭기도 하지만 논리적 설득력이 뛰어나 감히 언쟁할 엄두도 못 낸다.

미슐랭 스리 스타의 비결은 무엇인가.

조엘 로부숑의 천재 요리가 기본이다. 모든 스태프가 그의 완벽한 요리를 그대로 따르면 훌륭한 음식이 만들어진다.

미슐랭 스리 스타 평가를 받은 뒤 스카우트 제의는 없었나.

나는 로부숑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스카우트할 엄두도 안 낸다. 이제는 별점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게 나의 과제다.

‘와타나베 유우이치로’ 레스토랑의 꿈은 없나.

아내도 조리사다. 어린 세 아이들 중에 둘이 벌써 조리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와타나베 레스토랑의 꿈이 없는 건 아니지만 먼 미래의 일이다.

조엘 로부숑(Joel Robuchon)
위치 도쿄 에비스 가든플레이스 내
전화번호 81-3-5424-1347
홈페이지 www.robuchon.jp
영업시간 (점심)오전11시30분~오후2시30분,(저녁)오후 6~10시(마지막 주문 기 준)
코스메뉴가격 점심 8960엔부터, 저녁 2만4650엔부터
좌석 수 40석, 별실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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