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엔 한 집에 주소가 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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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으로 고객들의 신청을 받아 전보·카드를 배달해 주는 KT 홈페이지에서는 주소 검색창에 ‘독서당길 204’(서울 성동구)처럼 도로를 중심으로 한 ‘새 주소’는 사용할 수 없다. 이를 입력하면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온다. ‘금호동 800번지’같이 번지로 된 ‘옛 주소’를 써야 한다.

 새 주소가 외면받고 있는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먼저 새 주소를 도입했던 서울 강남구가 새 주소 체계를 올해 중 모두 바꾸기로 했다. ‘동산말길 74’ 같은 새 주소로는 지역 주민들이 그곳이 어디를 지칭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논현로 서24길 74’로 고친다는 것이다. ‘남북으로 나 있는 논현로를 기준으로 서쪽에 있는 곳’이라는 정보를 담겠다고 한다.

 길 이름(도로명)으로 된 새 주소는 2007년 4월 기존의 지·번 주소와 함께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지·번 주소를 쓸 수 없고 새 주소만 써야 한다. 신분증과 공문서, 도로 안내 표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문제 많은 새 주소, 고쳐도 또 혼란·낭비 우려=강남구는 24일 “20개 간선도로를 기준으로 하고, 동서남북 방위와 번호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이름을 새로 짓겠다”고 밝혔다. 강남구는 1997년 시범사업지역으로 선정돼 새 주소 체계에 맞춰 934개에 이르는 이면도로에 일일이 이름을 지었다. ‘진달래길’ ‘가로수길’처럼 꽃·나무 이름을 따거나 지역 특성을 살린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들 이름을 10년 동안 사용해봤지만 생소하고, 위치 파악도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자 이를 ‘도산대로 북1길’ 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맹정주 강남구청장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으로 주소 체계를 개선해 새 주소 사업을 조기에 정착시키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남구처럼 바둑판 형식으로 개발된 타 시·군·구에서도 벤치마킹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강남구를 본떠 이미 어느 정도 보급된 새 주소를 또 고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늘어날 경우 큰 혼란과 예산낭비가 불가피하다. 택배업체·내비게이션업체처럼 새 주소 입력을 마친 회사들은 ‘또 바뀐 새 주소’를 다시 입력해야 한다. 이제 겨우 새 주소에 익숙해질 만했던 주민들의 혼란도 충분히 예상된다.

 ◇서울에만 250억원 투입된 새 주소 사업=새 주소 사업에 따라 서울에서만 2002년까지 1만9900개 도로 이름을 만들고 표지판을 설치하는 데 222억원이 투입됐다. 자치구당 9억원 가까운 예산이 들어갔다. 222억원 중 87억원을 서울시가 냈고, 25개 자치구가 모두 72억원, 중앙정부가 15억원을 냈다. 이후 2004년부터 2년간 이들 도로 이름을 수정해 1만7072개로 줄이고, 표지판을 고치는 데 또 27억원이 쓰여졌다.

 서울시는 최근 8000만원을 들여 ‘서울시 새 주소 책자’ 2만1000부를 제작했다. 다음주 이들 책자를 동사무소 등 각 행정기관에 배포할 계획이다. 강남구가 새 주소를 고치면 내년에 이 책자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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