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속 ‘또 다른 인생’도 아이구Money!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세컨드라이프의 가상금융회사인 BCX은행 입구에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공고가 붙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뉴욕 월가를 비롯한 지구촌 금융시장이 휘청거리는 가운데 가상세계에도 금융위기가 닥쳤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가상현실 게임인 ‘세컨드라이프’에서 영업하는 금융회사에 고객들이 몰려들어 예금을 빼내가는 사태(뱅크 런)가 일어났다. 세컨드라이프에서 통용되는 ‘린든달러’는 이용자가 신용카드로 구입해 가상 세계에서 쓰는 돈으로, 언제든지 진짜 돈으로 바꿀 수 있다. 세컨드라이프 운영사인 린든랩이 홈페이지를 통해 고시한 환율(22일)은 1달러에 265린든달러다. 게임이긴 하지만 이용자는 실제로 손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가상 공간의 금융 위기는 연간 200%의 고수익을 약속하고 영업을 한 금융회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이 금융회사는 고객으로부터 린든달러를 받아 가상세계에서 도박과 부동산업에 투자했다. 세컨드라이프에는 한동안 도박장이 개설돼 있었고, 고객들은 린든달러를 걸고 도박을 할 수 있었다. 도박은 현실세계 못지않게 가상세계에서도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가상 공간의 정부라 할 수 있는 린든랩이 지난해 여름 도박사업을 금지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그래픽 크게보기>

더 이상 고수익을 낼 수단이 없어진 것이다. 회사가 고객들에게 약속한 수익을 맞춰주지 못하게 되자 고객들의 불만이 커졌다. 이 사실을 안 린든랩은 올 초 이 금융회사를 폐쇄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불안한 고객들은 너도나도 예금을 찾아 나섰다. 린든랩은 최근 이 금융회사가 세운 10개의 지점을 폐쇄하고 더 이상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불안감은 다른 금융회사로 번져 곳곳에서 인출 사태가 일어났다. 가상 금융회사인 JT파이낸셜 측은 “예금을 찾겠다는 고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잠시 영업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얼마나 많은 고객이 손실을 봤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문제가 확대되자 린든랩은 “이용자들이 실제 피해를 보고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현실세계처럼 금융감독기관을 두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