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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2년-바람잘날 없는 人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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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 집권 2년동안 우뚝 부각된 인물도 많지만「팽(烹)」의 쓰디쓴 눈물을 삼키며 떠난 인물도 적지 않다.
개혁의 바람이 거셌던 탓도 있지만 대형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집권 1차연도의 인사는 金대통령의 오랜 측근들인 민주계의 부상과 민정계 및 구여권(舊與圈)세력들의 몰락으로 특징지어진다.
金대통령은 그러나 집권 2차연도 후반기인 지난해 10월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최병렬(崔秉烈)의원을 서울시장으 로 발탁한 이후 연말개각과 2월7일 민자당 전당대회에서 민주계를 2선으로후퇴시키고 민정계를 대폭 기용했다.최근 안기부의 지자체선거연기여론조사문건 파문으로 사임한 김덕(金悳)통일부총리의 후임에 나웅배(羅雄培)의원을 기용한 것도 같 은 맥락이다.
金대통령은 자신을 악의적으로 괴롭힌 인물에 대해서는 가혹하다.대신 내사람이라고 인식된 사람은 철저히 챙긴다.
집권후 인사에서는 이런 성향이 더욱 두드러진다.주요당직자와 총리,내각의 면모를 들여다보면 YS대통령만들기와 무관한 인물을찾기 힘들 정도다.
오랜 측근들에 대한 배려는 각별하다.최형우(崔炯佑)의원은 민자당 사무총장과 내무장관을 역임했으며 김덕룡(金德龍)의원은 정무1장관을 거쳐 사무총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가신출신의 최기선(崔箕善)前인천시장이 인천북구청 세무비리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金대통령은 두고두고 애석해 했다.
대선당시 부산 초원복국집사건의 박일룡(朴一龍)경찰청장과 김기춘(金淇春)KBO회장,정경식(鄭京植)헌법재판관 등의 등용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6共때부터 지금까지 직책을 바꾸지 않은경우는 추경석(秋敬錫)국세청장이 유일하다.金대통 령이 명분과 도덕성을 강조하다보니 단명하는 공직자들이 많이 생겨났다.취임초박희태(朴熺太)법무.박양실(朴孃實)보사.허재영(許在榮)건설장관.김상철(金尙哲)서울시장 등이 자녀대학입학과 재산축적문제.그린벨트 훼손문제 등으로 10여일만에 물러났다.취임 첫해 문책인사로는 이계익(李啓謚)교통부장관이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고와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등으로 물러난 것이 유일하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대형사건사고가 잇따라 문책인사도 많았다.4월 김양배(金良培)농림수산부장관이 우루과이라운드 이행계획서 수정사건으로 물러났으며 박태권(朴泰權)충남지사는 사전선거운동 파문으로 사임했다.이원종(李元鐘)서울시장은 지난해 10월 성수대교붕괴참사로 불명예 퇴진했으며 후임 우명규(禹命奎)시장도 전력시비에 말려 10일만에 사임했다.
金대통령의 인사는 불똥이 튈 조짐을 보이면 야당공세에 앞서 칼을 대는 것도 특징이다.지난 22일에는 안기부의 지자체선거 연기 문건이 보도되자 하루만에 당시 안기부장이던 김덕(金悳)통일부총리를 해임했다.당시 담당국장이던 정형근(鄭亨 根)안기부1차장의 사표도 수리됐다.지방선거 출마예상자 동향보고와 관련,김용선(金鎔善)경기도지사도 사건 이틀만에 경질됐다.
지난해 인사의 최대파란은 이회창(李會昌)국무총리의 사퇴다.문민정부의 초대 감사원장에서 총리로 발탁된 李총리는 외교안보관계장관회의의 보고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다가 청와대의 노여움을 샀다.金대통령보다 더 개혁이미지가 강했던 李총리의 사 퇴는 金대통령에게도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
개혁초기 재산공개파동에 떠밀려「토사구팽(兎死狗烹)」을 외치며의원직을 사퇴했던 김재순(金在淳)前국회의장,뒤이은 박준규(朴浚圭)前국회의장이「팽」의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金대통령은 고개를빳빳이 들고 대드는 인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
올들어 최대 충격은 김종필(金鍾泌)민자당대표의 탈당이다.金대통령은 취임후『당은 金대표를 중심으로 운영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지난해 11월부터 불어닥친 金대통령의 세계화바람에 휘말려12월의 어느날부터 청와대 주례보고도 취소됐다.
金前대표는「당의 세계화에 부적합한 인물」로 낙인찍혀 대표직에서 물러나게되자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을 구성했다.지자체선거를 눈앞에 두고 벌어진 金前대표의 탈당은 지역정서와 결부돼 金대통령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민자당 후보경선과 대선에서 도움을 받았고 그동안 민자당대표로 활용했던 인물을 상처투성이로 만들어 내모는 방법론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다.
역사적으로 개혁은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현실 정치에서는 저항세력을 양산하는 이중성을 갖고있다.여기에 金대통령의 고민이 있다.
그래서 지난 연말 개각과 2월초 당직개편에서 민주계를 2선으로 물리고 행정 유경험자와 민정계를 대폭 기용했는지도 모른다.
가신이나 민주계가 아니면서도 신임이 두터운 인물도 있다.이홍구(李洪九)총리는 주영(駐英)대사.월드컵 유치위원장.통일부총리를 거쳤다.권영해(權寧海)안기부장은 문민정부 초대 국방장관으로하나회 척결등에 공을 세웠으나 율곡사업비리등의 구설수에 휘말려경질됐다.그는 문민정부 토사구팽의 전형적 사례로 꼽히기도 했으나 연말개각에서 안기부장으로 화려한 재기를 했다.
청와대의 한승수(韓昇洙)비서실장과 한이헌(韓利憲)경제수석.김영수(金榮秀)민정수석 등은 대선에서의 공로와 행정경험등을 인정받는 케이스다.과욕을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인물들을 중용하는 金대통령 인사의 한 단면이다.
『인사는 만사』라며『내각은 대통령 재임기간중 같이 가는 것이바람직하다』고 했던 金대통령이 총리를 4명째 맞고 있고 대폭 개각도 두차례,문책 인사도 적지 않았다는 것은 아이러니다.그만큼 한국정치의 현실은 불안정하고 돌발변수가 많다는 증거다.
〈金斗宇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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