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제 현실 보여준 슬픈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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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황 상태에선 탈출했지만 바닥은 아직 모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하로 23일 세계 증시가 일단 안정세를 찾았지만, 시장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세계 최대의 채권펀드인 핌코의 창업자 빌 그로스는 “FRB의 기습적인 금리 인하는 미국 경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슬픈 고백”이라며 “이번 인하로는 충분치 않고, 추가로 금리를 더 빨리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날 “이번 조치는 신음하는 환자(미국 경제)에게 응급 주사를 놓은 것과 같다”며 “주사를 맞는다는 것은 그만큼 상태가 심각한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FT는 “금리 인하로 시장이 다소 진정될 수는 있지만 미국을 경기침체로 몰아가고 있는 흐름이 중단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아시아 등 신흥시장에 대한 전망도 좋지 않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이날 “미국 경제가 불투명해지면서 지난해 신흥시장에 투자했던 미국 기관투자가들이 매도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지난해 11월 미국의 뮤추얼펀드는 해외에서 44억 달러를 순매수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BNP파리바의 앤드루 프레리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홍콩 증시가 급락한 것은 미국과 유럽 펀드들이 돈을 빼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금리 인하가 과연 효과가 있을 것이냐를 두고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던컨 니더라우어 최고경영자(CEO)는 “금리 인하는 시장 안정에 꽤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고 FRB를 거들었다. 그러나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이번 금리 인하는 재앙의 시작”이라고 혹평했다. 금리를 내려도 경제가 되살아나지 않고 오히려 물가만 오르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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