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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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학기말 고사의 마지막 시험지를 제출하고 강의실을 나와서,나는강의실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소라를 기다렸다.써니가 입원해있다는 병원에 가봐야 했기 때문에 종강파티에는 참석하지 못할 거였다.그래서 소라와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다.
『방학 동안에 잘 지내.난 지금 가야 되거든.서울에 있을 거니.』 소라가 나를 알아보고 다가왔을때 내가 말했다.
『너… 힘들어 보여.요즘.』 『아냐,곧 괜찮아질 거라구.세상일이 다 그렇잖아.』 나는 발끝으로 땅을 툭툭 차면서 겨우 말했다. 『난 용호도에 가 있을 거야.…잘 지내 너도.』 『거기주솔 아니까…엽서라도 쓸게.잘 지내.』 소라와 악수를 하고 돌아서서 몇발짝을 걷는데 소라가 나를 불러세웠다.소라가 몇 발짝내게로 다가왔다.
『피난처가 필요하면 언제라도 용호도로 와.알지?』 나는 한손을 쳐들면서 소라에게 웃어보였다.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그런 거였다.
써니가 입원한 병원으로 갔다.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무릎부위와 어깨의 찰과상은 입원해야 할 정도의 중상은 아니지만,써니가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기 때문에 병원에남아 있는 거라고 써니엄마가 그랬다.써니는 나 를 보고도 고개를 돌렸다.할 말이 없다는 건지 아니면 정신병원에 가는 걸 거부했기 때문에 내게 미안해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써니엄마가 잠시 병실을 비운 사이에 써니가 입을 열었다.
『시험 잘 봤어?이제 방학인 거지?』 『그래.넌 왜…집에 안가고 여기 누워 있는 거지?』 『나 여행가고 싶어 너하고.고래잡으러 가고 싶어.동해로 말이야.딱 하루라도 좋아.그러면 집에돌아갈게.정말이야.』 나는 병실 복도에서 써니엄마에게 써니의 제안을 전달했다.달수만 그래줄 수 있다면…,써니엄마는 좋다고 그랬다.나는 다음날 써니를 데리러 오겠다고 말했다.
집에서 배낭에 간단한 짐을 꾸리고 있는데 희수의 전화가 걸려왔다. -소라한테 들었어.종강파티에도 안 갔다며….
-그랬어.넌…방학 동안에 어디 안가니.어쨌든…잘 지내.
-나야 뭐 엄마나 아빠한테 가게 되겠지 뭐.넌….
-난…군대에 갈지도 몰라.
나는 불쑥 말했다.나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말인데 어쩌자곤지 불쑥 그렇게 튀어나오고 말았다.말해놓고 보니 거짓말인 것도 아니었다.
희수는 한동안 대꾸가 없다가 말했다.
-전번에 내가 니 뺨 때린 거 미안해.그땐 말이야.써니라는 애가 내게 엉뚱한 말을 했기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라…내가 널 진짜로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가 난 거였다.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랬어.
-잘 지내.다들 왜 이렇게 돼버렸는지 모르겠어.
나는 다음날 써니와 둘이 동해로 가는 밤기차에 올랐다.기차가서울을 벗어날 때쯤 써니는 벌써 내 어깨에 기대서 잠들어 있었다.피곤했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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