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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문화

한반도 운하 돌려서 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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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의 관심사는 ‘물이라는 세상의 중심 물질이 어떻게 생명과 권력의 순환주기 아래서 자리 잡고 흥망성쇠를 거듭해 왔는가’ 하는 의구심을 푸는 것뿐이다.

 지구라는 별에 생명이 기거하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물 덕분이다. 물에서 나온 생명체임을 증명하듯 인체의 70%는 물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도 어머니의 자궁 안 양수 속에서 머무르다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만 보면 근원 모를 평화와 안락감을 느낀다. 호수·바다·강·시내의 이미지는 때론 포악한 일면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배 속과 같은 풍요와 나른한 안식, 생명의 숨결을 연상시킨다. 철학자 바슐라르가 물에서 ‘대지의 참다운 눈’을 발견하고 몽상할 정도로 복잡다양한 성질의 물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감성을 사로잡아 왔다. 물을 주제로 창작된 많은 그림과 음악, 그리고 박수근 화백이 그려 비싼 값에 팔렸다는 그림처럼 물가인 ‘빨래터’가 사람들에게 매료되는 것을 보면 상상력의 원천으로서의 물의 무한적 속성은 끝이 없다. 물이 보이는 한강변 조망 좋은 아파트나 호수도시 근처가 집값이 비싸지는 것이나, 틈만 나면 물가로 달려 나가려는 도시민의 주말충동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인류의 최초 문명도 물가에서 시작됐다. 황하·메소포타미아·나일·인더스 문명 모두 큰 강가에서 만들어졌는데 당시 사람들은 물의 생산적 측면을 중시했다. 경관의 아름다움보다는 홍수를 막고 수확량을 늘리는 문제가 생존의 관건이었다. 제방을 쌓고 물길을 트고 돌리는 일에 생사가 직결된 이 시대에는 물줄기를 잘 다스리는 자가 신망과 권력을 얻었다. 신농· 복희·황제 등 고대 중국 권력자들의 전직은 치수관(治水官)이었다. 물에서 권력 났지만 재정을 고려하지 않고 끊임없이 운하를 파댄 수(隋)의 양제는 물로 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 시대가 쏜살같이 흘러갔다. 농사가 생산의 핵심이 되던 사회는 가고 정보 혹은 문화가 세인의 화두가 되는 시대와 만나면서 물은 다시 새로운 관점의 권력탄생을 준비했다. 썩었던 청계천에 맑고 고운 물이 흐르자 잃어버린 물가로 몰려든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고도성장의 그늘 속에 잊혀졌던 생명의 근원을 황량한 도시 한복판에서 만끽한 시민들의 열광은 새 정권 탄생의 일조로 이어졌다. 생산적 측면에서만 각광받던 물이 다시 인간의 내재된 미적 가치와 만나며 타고난 속성대로 또 다른 권력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반도 운하는 새 권력의 계속성을 보장해 주는 매력 상품이 될 것이 분명하다. 찬성론자들이 내세우는 획기적인 물류 개선효과 등은 반대론자들의 주장대로 경운기 속력의 효용성밖에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배를 타고 이 운하를 가로질러 가는 순간 상황은 백팔십도 역전된다.

 땅에서 강을 보는 사람들은 물 위에서 본 조국 산하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이해할 수 없다. 운하를 오가며 물위에서 거꾸로 바라본 아름다운 땅과 산하의 기억은 국민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미에 대한 관심과 꿈 또한 더욱 높여줄 것이다. ‘물의 꿈’이 만들어낼 예술가, 철학자의 탄생은 물론 상상력이 커진 사람들이 가꾼 아름다운 마을, 아름다운 주변 강산이 신관광자원으로 바뀌는 천지개벽도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환경오염에 충분히 대비해 운하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의 얘기다.

 적어도 나의 판단으로는 한반도의 물길이 뚫린다면 향후 새 정권의 10년은 떼놓은 당상이 될 것이다. 권력을 놓친 정치 세력들의 한숨은 더욱 높아만 갈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순전히 사람들을 꿈꾸게 하고 권력을 만들어 내는 물의 본질과 속성을 이해 못한 업보다. 합장(合掌).

홍사종 미래상상연구소 대표

◆약력: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정동극장장·숙명여대 문화관광학과 교수·경기도 문화의전당 사장 역임, 미래상상연구소 대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