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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노사민정위’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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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제점도 많았다. 외환위기라는 급박한 상황이 없어진 이후에는 합의를 이룰 동기가 미약해 노사정 모두가 합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됐다. 노사정위에서의 합의사항이 국회와 행정부에서 지켜지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며 노동계는 자주 대화를 거부했다. 사용자는 98년의 대타협 이후에는 논의되는 사안이 주로 노동기본권에 대한 것이라며 협의과정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정부는 정책결정 권한을 노사정위와 공유하는 것을 불편해 하며 정부가 주도하는 사회적 대화라는 아이러니를 추구하는 듯했다. 그 결과 노사정위원회는 지난 10년 중 대타협을 이뤄낸 첫 1개월을 제외하고는 별 성과를 내놓지 못한 채 “짧은 성공과 긴 좌절”을 겪어 왔다.

이명박 정부는 노사정위를 노사민정(勞使民政)위원회로 바꾸는 구상을 내놓았다. 지역의 노사정과 시민단체가 참여해 무분규 선언 등 노동 현안에 대해 합의를 이루도록 하고 중앙의 노사정위원회는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무분규가 합의되고 지켜지면 사업장과 지역에 지방재정 교부금과 보조금을 지원하고 세금 혜택을 주는 방안이다. 노사민정위원회는 사안이 단순하고 명료한 지역단위 대화를 강조함으로써 합의를 이룰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이 장점이다. 이미 부천시처럼 효율적으로 지역단위 노사정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례도 있다.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하여 대표성이 약하므로 시민단체를 포함해 대표성을 높이는 시도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이 구상에는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우선, 무분규 지역에 혜택을 주는 정책은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분규를 피하기 위해 정부와 사용자가 과도하게 양보해 오히려 노동계의 협상력을 높여주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노사분규의 발생을 중요한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무분규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지역 단위에서 고용창출, 노사공동 직업훈련 등 상생의 이슈를 강조하는 노사민정 대화가 바람직하다.

일부의 보도대로 노사민정위원회가 지역 단위 노사정위원회에만 초점을 두고 중앙단위 노사정위원회는 거의 해체 수준으로 가져간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비정규직보호법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노동 현안들은 노사 간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부닥치는 사안들로서 정부안의 일방적인 추진은 극심한 반발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법안들을 추진하기에 가장 좋은 논의의 장은 중앙의 대화기구다. 결국 전국적 이슈를 다루는 중앙단위 위원회와 지역의제를 논하는 지역단위 위원회가 긴밀히 서로 조율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지역단위 노사정협의체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새 정부에서 모델로 삼고 있는 아일랜드의 경우에도 중앙과 지역의 노사정협의체가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

덧붙여, 중앙 단위 노사정 대화기구의 장은 정치적으로 중량감이 있는 총리급 인사가 맡고 여야의 주요 정치인이 노사정 대화기구에 참여함으로써 합의사항이 국회와 행정부에서 반드시 지켜지도록 해야 한다. 합의사항 미이행이 빌미가 되어 추후의 협의가 진전이 안 되는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 정부가 이미 정해진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한 들러리 기구로 노사민정위원회를 이용하려고 한다면 어떤 형태의 사회적 대화도 성공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노사민정 대화는 정부 주도가 아닌 중앙과 지역의 노사와 민간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기구로 당사자들의 의견수렴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