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구원투수’ 나선 일본 은행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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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일본의 대형 은행들이 위기에 빠진 월가(街)를 위해 구원투수로 본격 등장할 태세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16일(현지시간) 일본의 3개 대형 은행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월가 은행들에 최대 100억 달러의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미쓰비시UFJ, 미즈호, 스미토모미쓰이 파이낸셜그룹 등이 먼저 월가 투자에 나선 아시아 지역의 국부펀드와 직접 경쟁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과 싱가포르·쿠웨이트의 국부펀드에 이어 한국투자공사(KIC)도 최근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 은행들의 이런 움직임에 도쿄 증시의 반응은 냉랭한 편이다. 미국의 증권사 메릴린치에 12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미즈호 그룹의 주가는 16일 8.8% 급락, 2004년 1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즈호 주가는 17일 5.2% 반등했지만 우려 섞인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아직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끝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최근 서브프라임 부실 사태로 미국과 유럽·일본의 21개 금융회사가 공식적으로 밝힌 손실액이 1078억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메릴린치를 비롯한 미국의 대형 금융회사의 손실액이 시간이 지날수록 불어나고 있어 전체 손실이 3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예측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씨티그룹의 경우 지난해 3분기에 밝힌 손실액은 64억 달러였지만 4분기에는 누적 손실이 286억 달러로 늘었다. 손실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것은 보유하고 있는 서브프라임 관련 증권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데다 팔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요미우리는 일본 금융사의 손실액도 45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16일 보고서를 통해 “미국 금융기관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에 따른 모든 손실을 제대로 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실 규모가 지금 드러난 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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