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부 조직 바꿀 자료 모아라” 1년 전 곽승준에 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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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발표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안은 1년여 전부터 준비돼 왔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자신의 ‘정책 두뇌’인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에게 “내가 당선된다면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조직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관련 자료를 수집해 보라”고 지시한 게 시작이었다. 이 지시를 받은 곽 교수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한반도선진화재단 등에 의뢰해 10여 개 연구보고서와 개편안을 모았다.

 이 자료들이 정말 쓰이게 된 것은 이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인 지난해 말이다. 인수위가 공식 출범하기 전 정부조직 개편안을 만들 적임자로 박재완 한나라당 의원이 결정되면서 축적돼 있던 자료들이 그에게 건네졌다. 박 의원은 미국 하버드대 정책학 박사로 행정고시(23회)까지 합격한 전문가다.

 박 의원과 곽 교수가 윤곽을 잡자 이 당선인까지 참여하는 본격 토론이 시작됐다. 한 번 시작하면 도시락을 먹어가며 5~6시간씩 매달리는 지난한 토론이었다. 역시 정통 경제관료 출신(행정고시 24회)인 임태희 당선인 비서실장과 박형준 인수위 기획조정분과위 간사 등도 참석해 지혜를 보탰다.

 하지만 쉽게 결론을 내리기에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았다. 한 개 부처를 없앴을 때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의실험까지 하려다 보니 실무자들은 밤샘 작업을 해도 늘 시간이 부족했다. 보안을 유지하는 가운데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도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다. 이 때문에 임박하는 듯했던 결정은 번번이 미뤄졌고 이 당선인이 주재하는 토론은 15차례나 이어졌다.

 결정이 시간을 끌게 되자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정부 부처들의 로비도 갈수록 치열해졌다. 인수위에 전화를 걸거나 찾아와 통사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산하 공기업 직원들을 동원한 ‘읍소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박 의원은 열흘 가까이 경기도 분당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망’을 다녀야 했다. 곽 교수도 하루에 100통이 넘는 호소성 e-메일을 공무원들로부터 받았다. 개중에는 협박성 편지도 있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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