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어지러운 즐거움 ‘버퍼링 개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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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감상하다 보면 수신 지연으로 화면이 멈추거나 끊어지는 ‘버퍼링’ 때문에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순간에 멈출지 모르는 버퍼링은 연예인에게도 쥐약이다. 버퍼링 순간엔 ‘제대로 망가진’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어서다. 이런 버퍼링을 코미디 소재로 끌어들인 게 KBS-2TV ‘개그콘서트’의 ‘버퍼링스’ 코너다. 진지한 발라드곡에서 폭소를 끌어내는 레이(엄경천·29·左)와 안윤상(26·右)을 만났다. 
 
둘의 노래실력은 수준급이다. 휘성의 ‘안되나요’, SG워너비의 ‘타임리스’, 임재범의 ‘너를 위해’ 등 가창력 없이는 소화하기 힘든 곡을 제대로 불러낸다. 관객들이 곡에 몰입하려는 순간 덜컥 버퍼링이 걸려버린다.

“그녀가 나를 떠나가 나가! 나가! 나가! 나가! 나가기 전에…그댈 미 텔미 텔미 텔미 텔미 텔미 텔 미워할 수 밖~수 박~수 박~수 박~수 밖에 없는 나.”(K2 ‘그녀의 연인에게’)
 
버퍼링 때문에 반복되는 가사들이 때론 이렇게 엉뚱한 단어로 바뀌어버린다. 그 단어에 맞는 동작도 반복된다. CD가 튀듯 한 소절쯤 퉁 건너뛰거나, ‘다다다다다다다다다’처럼 컴퓨터 작동 오류로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 소리도 양념거리다. 둘은 이 모든 버퍼링을 정확히 라이브로 소화해낸다. 정상적인 노래를 부르는 것과는 달리 버퍼링 부분의 박자를 딱 맞추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닐 터다. 처음엔 “머리가 좋아서 (잘 맞춘다)”라며 너스레를 떨던 레이는 “60~70회씩 반복 연습을 하는 게 비결”이라고 말했다.

“‘버퍼링스 다이어트’를 강력 추천합니다. 두 달 새 5kg이 빠졌어요. 복식호흡, 유산소 반복 운동이 되니까요.”
 
3분 여에 끝나는 짧은 코너지만 이들은 일주일을 전부 투자한다. 『노래방 대백과 사전』을 뒤적이며 선곡을 한다. 작가도 없다. MR(반주음악) 편집도 안윤상이 직접 한다. 안윤상은 2006년 성대모사 UCC를 올려서 뜬 뒤 2007년에 개그맨 데뷔한 신인. 버퍼링스가 첫 단독 코너다. 엄경천은 2001년 데뷔했지만 신인으로 오해 받곤 한다. 개그에 회의를 느껴 3년간 무대에서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개그를 하고 싶어하던 두 사람의 마음이 통했다. 누구처럼 “부모님, 이렇게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생김새 자체로 웃음을 자아내지도 못하는, 개그맨 치곤 너무나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들. 그래도 목소리 재주는 타고났기에 음악개그에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었다.

3개월 연구 끝에 버퍼링스 아이템을 잡아냈다. 시끄럽게 노래를 불러야 해 연습공간을 찾기 어려웠다. 처음엔 한강 굴다리 밑에서 연습했다. KBS 휴게실에서 연습하는데 옆 사무실 직원들이 눈치를 주고 간 적도 많았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한강엔 안 갔어요. 찬바람 쐬면 목에 안 좋거든요. 저희도 가수랑 똑같아요.”(안윤상)
 
그래서 찾아낸 공간이 따뜻한 비데가 있는 화장실이었다. 두 남자가 비좁은 화장실 한 칸에 들어가 반주를 틀어놓고 연습했다. 그렇게 올린 첫 무대부터 반응은 뜨거웠다.

“돌고래 박수가 터지더라고요. 돌고래처럼 물에 입수하는 듯한 동작으로 박수 치며 크게 웃는 거라 웃음의 최고 단계로 치거든요. 울컥하더군요.”(레이)
 
이수근의 ‘고음불가’ 이후 오랜만에 배꼽을 잡게 하는 음악개그는 이렇게 태어났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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