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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우직한 아줌마 땀방울 객석까지 튀었으면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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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임순례 감독(左), 심재명 제작자(右)

◆아무도 그녀들을 믿지 않았다
 
임 감독에게 ‘우생순’은 퍽 오랜만의 신작이다. 첫 장편 ‘세 친구’(1996)와 두 번째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까지만 해도 ‘올림픽 감독’(약 4년 터울로 영화를 만든다는 자조적 표현)이었건만, 이번 영화까지는 7년이 걸렸다. 그간 MK픽처스와 준비하던 ‘무림고수’는 캐스팅 난항으로 제작이 지연됐다. 호평을 받았던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성적은 좋지 않았다. 과작(寡作)의 감독은 본의 아니게 충무로의 마이너리거가 됐다.

 심 대표는 언뜻 메이저리거처럼 보인다. 90년대 중반 명필름을 차린 후 ‘접속’ ‘해피엔드’ ‘공동경비구역 JSA’ 등을 성공시키며 충무로의 손꼽히는 제작자가 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달랐다. MK픽처스로 코스닥 간판을 달고, 배급·투자까지 영역을 확대했으나 ‘수확’은 빈약했다. 그가 초심으로 되돌아와 내놓은 게 ‘우생순’이다.

 이래저래 ‘우생순’은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주요 배급사를 차례로 두드렸으나 다 퇴짜를 맞았다. 35억원 남짓한 제작비 가운데 5억원은 시사회 다음날에야 투자가 확정되는 곡절을 겪었다.

 “투자환경이 위축된 데다 임 감독이 상업영화를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있었어요.”(심재명) “시장이 좋진 않았지만 예상보다 힘들었던 거죠. 결국 우리들 상황이 이 영화와 비슷하게 됐어요.” (임순례)

 예고편에 쓰인 ‘아무도 그녀들을 믿지 않았다’는 카피는 이렇게 나왔다. 주변의 회의적 시선을 뚫어야 했던 ‘그녀들’은 영화 속에서 4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아줌마 선수들만이 아니었다.

◆여배우 대접? 영화는 단체경기다
 
 1주일 만에 다녀온 아테네 현지촬영을 포함, 영화 전체를 두 달 반에 찍는 빠듯한 일정이었다. 여배우가 주축이라 신경전도 컸을 법한데 막상 촬영장은 배우들의 ‘담합’으로 달아올랐다는 후문이다. 촉매는 임 감독이었다. “오케이! 잘했어요!” 하며 배우를 추어올리는 대신, “음, 됐고요. (만족스럽진 않지만) 골라 쓸게요”나 “이번에도 안 되면 골라 씁니다”를 연발하는 ‘위협성 연출’이었다.

 “여건도 여건이지만, 제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배우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고루 사랑할 수 없으니 아무도 사랑하지 말자고 그랬더니, 배우들끼리 서로 사랑하게 되더군요.”(임순례) “그 넓은 체육관에서 감독이 배우 하나만 따로 불러서 귓속말을 했으면, 제작자는 속이 터졌겠죠. 이 많은 컷을 언제 다 찍나. 결과적으로 현명한 태도였어요. 배우들끼리 뭉치고, 수다로 풀게 됐지요.”(심재명)

 아줌마를 맡기엔 다소 의외인 김정은·김지영은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다. “김지영씨는 드라마 ‘내 사랑 못난이’를 본 심 대표가 추천했어요. TV와 다른 영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만나 보니 작품 이해가 뛰어났어요. 바로 결정했어요.”

 선뜻 출연 의사를 밝힌 김정은과의 만남도 그랬다. “첫 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진실하고 성실하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나중에 그가 몸을 만드는 모습은 저도 놀랄 정도였지요.” 실제로 김정은은 체중을 8㎏ 불리면서 근육을 키웠다.

 임 감독은 핸드볼팀 감독 안승필(엄태웅)도 빼놓지 않는다. “수줍고도 개구쟁이 같은 엄태웅씨의 성격이 지금의 안승필을 만들었죠.”

 노처녀 골키퍼 조은지 역시 자기 몫을 톡톡히 해냈다. “당초 시나리오에서는 더 나이도 많고 뚱뚱한 인물이었어요. 조은지씨는 코믹 연기에 굉장한 재능이 있어요. 시나리오의 이미지와 실제 촬영장에서 생긴 갭을 그가 연기로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맞춤형 캐릭터로 일찌감치 캐스팅이 확정된 문소리도 나름의 고민을 겪었다. “소리씨는 있는 그대로 연기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감독이 캐릭터에 대해 따로 의논하고 확정을 해주지 않은 부분이 많아 힘들었을 겁니다.” 소속팀의 해체와 남편의 사업 실패라는 이중고에 놓인 미숙(문소리)이 영화에서처럼 밝은 인물이 된 것은 배우의 공이라는 얘기다. “제가 생각한 틀과 영화 사이에 차이가 있지만, 배우들 저마다 개성과 특질을 잘 발휘했어요.”
 
◆아줌마의 힘, 정직한 땀의 힘
 
 ‘우생순’을 스포츠 영화로만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경기의 박진감보다 선수들의 자잘한 일상에 자주 앵글을 맞추기 때문이다.

 “스포츠 영화를 만들려고 했으면 골 넣는 장면을 클로즈업하고, 슬로모션으로 순간의 긴장감을 극대화했겠지요. 그보다는 30대 노장 선수들의 투혼을 그린 휴먼 드라마예요.”(임순례)

 이 영화의 키워드는 역시 ‘아줌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중계방송을 지켜보고 영화를 기획한 심 대표의 출발점이 그랬다. “왜 저 아줌마 선수들이 저토록 절체절명으로 승부할까. 경기 직후 눈물도 흘렸지만 시상대에서 환하게 웃는 저 힘은 뭘까. 그게 궁금했어요.”

 그는 아줌마의 힘을 긍정했다. “현실을 긍정하는 힘, (오심이나 편파 판정에 대해) 남을 탓하거나 (비인기 종목이라는) 여건에 분노하는 대신 최선을 다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힘”을 스크린에 끌어들였다.

 임 감독은 좀 더 폭넓은 해석을 내놓았다.

 “살림 하나 잘하는 것도, 한 나라를 경영하는 것만큼 힘든데 운동까지 하는 선수들이잖아요. 그렇다고 운동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것도 아니고. 그런 아마추어 스포츠에 대한 오마주(경의)입니다. 땀 흘린 만큼 결과를 얻는 게 스포츠라고들 하잖아요. 몸으로, 땀으로 승부하는 그 우직한 근성이 아줌마의 힘이자 한국인의 심성이 아닐까 합니다. 해방 이후 반세기 만에 이만큼 일궈낸 저력이기도 하고요. 땀 흘려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우직하게 사는 게 바보처럼 여겨지는 냉소주의 대신에 정직한 땀의 가치가 객석에 전달됐으면 합니다.”

글=이후남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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