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본좌' 혹시 메시아 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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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자료사진]

대선 후보 출신의 허경영 경제공화당 총재(58)에 대한 궁금증이 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언론 매체들은 앞다퉈 대선으로 높아진 그의 인기를 활용하고 있고 네티즌들도 덩달아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IQ 430, 축지법, 공중부양,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는 허 총재의 이색 주장이 전파와 지면, 사이버 공간에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의 신빙성 여부를 확인하기란 어렵다. 이를 확인해줄 사람들이 대부분 고인이 됐기 때문이다. 설령 그의 이력과 업적에 대해 부인하는 사람이 등장해도, 허 총재는 ‘그 수준에서는 모를 수밖에 없다’고 몰아붙여 버린다. 몇몇 언론이 그의 행적을 엄밀히 추적했지만, 석연찮다는 정도의 결론만 내리고 두 손을 들고 만 것도 이 때문이다.

이쯤 되자 그에 대해 잘 아는 주변 인물들조차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잘 되면 신화, 잘못 돼도 그럴 듯한 상품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마당에 굳이 진실과 허구를 구분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어렵사리 접촉한 허 총재의 며느리 이모씨도 당초 약속을 깨고, 자신의 시아버지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자신들한테 득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불분명한 이력과 업적은 내버려두더라도 그의 언행 가운데서 확실한 것만 분명히 해두자. 우선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는 자신의 IQ가 430이며, 방송통신대와 새마을 운동 역시 자신이 고안했다고 주장한다. 둘째, 그는 천문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다. 기자들에게 자신이 직접 그렸다는 외계인 의상을 보여주거나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집착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셋째, 그는 머지않아 자신이 대통령이 돼 우리나라를 이끌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력과 업적에 대한 논란이 일 때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모든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공언한다.

정신분석학의 최신 경향에 밝은 전문가들에게 이같은 요소를 제시하면, 놀라운 답변이 돌아온다. 바로 ‘메시아 신드롬’(messiah syndrome)의 징후라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믿으며, 이 때문에 자신이 구세주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천문학이라든가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사람들 대부분이 약간씩은 이런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구세주 신드롬을 정신 병리 현상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그러나 추종자를 거느리고 그들에게 나름의 규율을 제시하는 등 실제 구세주식 행보를 할 경우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최근 정신분석학의 추세다.

1997년 프랭크 오콜린이 쓴 『구세주 신드롬』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적으로는 수십만명, 미국에서만 수만명이 이런 증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기독교나 유대교, 이슬람교 문화권에 이런 이들이 많다. 이 세 종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지역의 경찰청에는 아예 이런 증상을 앓는 가짜 구세주들을 잡아들이는 부서를 따로 두고 있다. 이 때문에 구세주 신드롬의 원인을 종교나 문화와의 관련성으로 꼽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정신 분석학에서는 구세주 신드롬의 60% 가량은 유년기의 정신 병력이나 자아도취(narcissism), 다중 인격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단순히 인간적인 자부심인지, 아니면 병적인 구세주 신드롬인지를 판정하는 것은 전문가들의 몫이다. 이들은 12개 가량의 질문을 던진다. 세상이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때문에 우울한가? 내면으로부터 목소리가 들리거나 메시지를 듣는가? 그리고 당신이 위대한 존재이고, 세상은 당신을 위해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는가? 등이다. 만일 항목별로 10점 만점에 평균 5점(총점 120만점에 60점) 이상을 받을 경우 병리 현상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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