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投' 엄정욱 더 무서워졌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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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쉭-'하는 바람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강속구는 타자들에게 본능적으로 공포를 일으킨다. 레너드 코페트의 유명한 야구해설서 '야구란 무엇인가'도 바로 그 두려움에서 시작한다.

일본 오키나와 캠프에서 훈련 중인 프로야구 SK의 '와일드싱(Wild Thing)' 엄정욱(23)이 일본 타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아직 최상의 컨디션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직구 평균구속이 시속 1백50㎞를 가뿐히 넘긴다. 최고구속은 1백55㎞까지 기록했다. 지난 20일 엄정욱에게 3이닝 무실점으로 눌린 니혼햄 파이터스의 미국인 감독 트로이 힐만은 "유연성도 좋은 데다 공끝에 힘이 실렸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기록도 괜찮다. 엄정욱은 일본 프로 1~2군팀과의 세차례 연습경기에서 7이닝 2실점(1홈런)했다. 처음 두 경기는 2이닝과 3이닝을 던져 모두 무실점이었다. 지난 24일 주니치 드래건스를 맞아 1회 1점홈런을 맞았고, 2회에는 볼넷 3개와 1안타로 1실점했다. 그래도 벤치에서는 대만족이다. 2회 1실점 후 1사만루에서 후속 타자를 삼진과 2루 땅볼로 잡아낸 점을 높이 사는 것이다. SK 조범현 감독은 "예전 같으면 3연속 볼넷 이후 무너졌을 텐데, 정신적으로 한단계 올라섰다"고 칭찬했다.

엄정욱이 '엄청' 달라졌다. 시속 1백60㎞의 강속구를 던졌던 강철어깨를 다스릴 마음자세가 갖춰졌다는 말이다. "15승 하면 1억원 주실 건가요"라며 민경삼 운영팀장에게 먼저 농담을 거는 모습에서,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히던 과거를 찾아보기 힘들다.

팀도 엄정욱 키우기에 공을 들인다. 지난해 미국 플로리다 캠프 때는 박찬호(텍사스 레인저스)와 친한 손차훈 1군 매니저를 통해 엄정욱과 '코리안 특급'의 만남을 주선했다. 엄정욱은 당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맞으면 타자가 잘 친 것"이라는 박찬호의 조언을 가슴에 새겼다고 한다. 또 오키나와에서 가진 네 번의 연습경기 중 엄정욱에게 세차례나 선발을 맡겼다. 자신감을 키우려는 배려다. 엄정욱은 이제 '만년 유망주'에서 '강속구 선발투수'로 탈바꿈하고 있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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