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있는풍경>경기양주 우리농원 禹好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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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입춘이 지난 탓일까.영하의 기온 속에서도 봄기운을 매단 햇빛은 산등성이에 안개같이 희뿌연 빛알갱이를 뿌려대고 있었다.
아직 추위에 웅크린 촌가들이 산세가 수려한 천보산의 품깊은 자락에 안겨있는데 「그랜저를 타는 농사꾼」우호희(禹好喜.51.
경기도양주군주내면삼숭2리)씨의 「우리농원」은 계절과는 무관한듯파란 상추와 쑥갓을 왕성하게 키워내고 있었다.
유기농법에 관한한 농과대 교수들에게 강의를 해줄 정도로 이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우씨는 연간 1억원의 소득을 올리며 스스로 농사짓는 일을 「예술의 경지」라고 자부하는 사람이다. 그는 「농사꾼이 촌놈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번돈을 장학사업에도 쏟아넣고 시행착오로 배운 진귀한 산지식을 나누기 위해 때론 대학에 나가 예비농민들을 위해 특강을 하기도 한다.또 1년에 한달은 선진국의 영농현장을 다니며 배움을 갈고 닦기도 한다. 우씨는 자신을 「개척자」라 부른다.시골에서 자란 그는 20대 초반 서울내기로 변신을 시도했으나 세월이 가도 쌓이는 것없는 70년대초 주내면으로 돌아왔다.
무일푼으로 돌아온 그는 마을 사람에게 사정한 끝에 월 7부이자 돈을 빌려 처음 4백여평의 땅뙤기를 구입했다.
벌판 한가운데 돌과 베니어판으로 살곳을 짓고 양계를 시작했다.그러면서 황무지를 옥토로 가꾸자는 생각에 수십리 떨어진 축산농가에서 우분을 실어와 쓸만한 땅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살충제를 써서 재배한 딸기를 어린아이가 시장에서 그냥 먹는 것을 보고 농약을 사용해 짓는 농사는 「간접살인과 다름없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자연 관심이 퇴비를 쓰는 유기농법으로 쏠렸다.
국립농산물검사소는 그의 땅이 유기물 함량이 높고 채소에 주는지하수는 깨끗하기로 따를 농가가 없음을 판정해줬다.
그 때문인지 그가 생산한 채소들은 깨끗하고 맛있는 것으로 소문이 났고 10년 전부터 「무공해식품」을 판매한다는 P식품에 전량을 납품,판로개척의 번거로움 없이 탄탄한 기반을 쌓아갔다.
물론 작물선정.물공급.온도조절등의 문제로 그사이 실패를 거듭했고 시행착오로 얻은 값진 교훈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그는 의사.변호사.사업가등 30명으로 구성된 한 실업인협회의장학담당 부회장으로 어려운 청소년들도 돕고 있다.이제 어렸을 때 가졌던 「촌놈의 열등감」에서 진정 벗어났다고 그는 말한다.
高惠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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