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공원 벽화 그리는 자원봉사자 이소영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25일 오후 과천 서울대공원 유인원관. 안쪽으로 침팬지.오랑우탄.고릴라 우리가 들어선 건물 한가운데 설치된 콘크리트 회벽이 울창한 밀림으로 바뀌고 있다. 벽화 자원봉사자 이소영(24)씨의 손에 의해서다. 최근 중앙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李씨의 손이 쓱쓱 움직일 때마다 칙칙한 회벽은 태고의 생명력을 지닌 원시림으로 다시 태어난다.

"동물들이 하루종일 회색빛 벽만 보고 있자니 얼마나 갑갑하겠어요. 그림으로라도 밀림을 보면 기분이 좀 풀리지 않을까요."

李씨는 유인원관 벽화에 가장 적합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육사의 조언을 얻는 한편 지난해 말부터 두달간 아프리카 밀림 사진 1백여장을 모아 컴퓨터 시뮬레이션 작업을 했다.

41년간 원숭이 사육사로 일해온 이길웅(63)씨는 2개월된 아기원숭이 '주리'와 함께 이곳을 둘러보며 "이제야 진짜 원숭이들이 사는 숲속 같다"고 말했다.

李씨가 서울대공원에서 벽화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2002년 겨울. 동물원에서 태어난 아기 동물이 사는 '인공 포육원'이 삭막한 콘크리트 방이라는 것을 TV에서 보고나서부터다. 인터넷 벽화동호회를 운영하던 李씨의 자원봉사 덕분에 지금 인공 포육원 벽면에는 엄마 원숭이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고 있는 아기 원숭이, 축구공을 갖고 장난치는 아기 호랑이 등 생동감 넘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벽은 의사의 단절을 뜻하죠. 하지만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벽화는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벽화를 보고 즐거워 하셨다면 벌써 동물들과 색다른 관계를 만드신 게 아닐까요."

앞으로 미국 뉴욕에서 미술 공부를 할 예정이라는 李씨는 "서울대공원이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토종 생태동물원 조성에도 제 그림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형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