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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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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본 굴지의 가전업체인 마쓰시타는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1894~1989년)가 1918년 설립했다. 그는 부친의 사업 실패로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화로가게와 자전거포, 전구회사를 10여 년간 전전했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2평짜리 전기용품 가게에서 그는 전구에 쓰이는 쌍소켓을 발명했다. 이것이 대히트해 세워진 회사가 마쓰시타다.

고노스케는 “이직률이 높아지면 이는 결국 회사 손해”라며 연공서열제와 종신고용제를 도입했다. ‘일본식 경영’의 창시자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입버릇은 “마쓰시타는 사람을 만드는 회사다. 그리고 동시에 가전도 만들고 있다”였다. 96세인 89년 4월 폐암으로 숨지기까지 그는 5000억 엔의 자산을 모았다. ‘경영의 신’이란 칭호도 얻었다. 그러나 돈과 명예보다 중시한 것은 ‘마쓰시타’의 자존심이었다.

80년대 후반 병원에 입원해 있던 고노스케에게 한 임원이 넌지시 제안했다. “이제 마쓰시타와 내셔널은 너무 오래됐다. 사명과 브랜드를 ‘파나소닉’으로 통일하자.”
 
당시 마쓰시타는 사명은 마쓰시타, 백색 가전은 ‘내셔널(National)’ 브랜드를 썼다. 수출용 제품과 음향기기에만 ‘파나소닉(Panasonic)’을 썼다. 내셔널은 ‘일본 국민의 필수품이 되는’이란 뜻으로 고노스케가 직접 작명한 것이었다. 뜻밖의 제안에 고노스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얼굴만 부르르 떨었다고 한다. 임원은 얼굴이 파래진 채 바로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래서 고노스케 사후에도 사명과 브랜드 이름은 성역으로 여겨졌다.
 
10일 마쓰시타의 오쓰보 후미오(大坪文雄) 사장이 “창업 90주년을 맞아 사명을 마쓰시타에서 파나소닉으로 바꾸고 내셔널 브랜드도 다 파나소닉으로 바꾼다”고 전격 선언했다. 향수(창업자의 이름)보다 글로벌 성장이 우선이란 설명이다. 마쓰시타의 해외판매 비율이 50%로, 소니(70%)·삼성전자(80%)에 비해 뒤지는 주 원인은 브랜드 분산에 있다는 것이다.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마쓰시타 가문인 명예회장과 부회장도 사명 변경에 동의했다고 한다.

이로써 일본식 경영을 도입해 경제대국의 발판을 마련했던 고노스케의 신화는 막을 내렸다. 동시에 창업자 성이나 이름을 사명으로 쓰는 일본의 대기업도 사실상 사라졌다. 고노스케가 아무리 ‘경영의 신’이었다고 해도 수출용으로 만든 파나소닉이란 상표가 회사 이름에서 자신의 성까지 파낼 줄이야 예견했었을까. 그래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고 했는가.
 

김현기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