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닝 시즌과 그 이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호 24면

국내외 증시의 어닝(실적발표) 시즌이 돌아왔다. 지난해 4분기 실적치가 담긴 ‘판도라 상자’의 개봉을 투자자들은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다. 최근 실적은 가까운 미래 실적의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상장사들의 실적전망 코멘트는 주가 향방을 좌우한다.

올 어닝 시즌은 반갑지 않은 소식으로 막을 올렸다. 바다 건너 미 기업들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주말 뉴욕과 유럽의 주가가 급락했다. 월가의 전문가들은 이미 실적 기대치를 잔뜩 낮춰놓았다. S&P500 편입 기업의 4분기 순익 증가율 전망치를 -8.1% 정도로 설정했다. 치욕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일부 기업의 실적 공개치가 이보다도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실물경제의 침체 논쟁을 떠나, 기업 실적 측면에선 미 경제가 이미 침체에 빠져든 게 분명하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 어닝 시즌의 하이라이트는 15일이다. 정보기술(IT)업계의 대표주자인 인텔과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장의 가늠자인 씨티그룹,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의 대변자인 노키아 등이 실적을 내놓는다. 국내에선 같은 날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가 실적을 공개한다.

국내 기업의 사정은 미국보다 훨씬 좋다. 4분기 순익 증가율이 20%대에 달할 것이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 때문에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발 ‘어닝 쇼크’ 여부에 촉각이 곤두서 있는 상황이다. 미국 기업들의 실적이 잇따라 기대 이하로 나타나면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 매도 공세는 더욱 거세질 공산이 크다. 미국에서 입은 손실을 한국에서 벌충하기 위해서다.

우리 기업들의 실적은 앞으로가 문제다. 더 올라가기보다는 내려갈 요인이 자꾸 드세지는 형국이다. 미국 경제가 침체로 들어서면 일정 시차를 두고 국내 기업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석유 등 원자재값의 고공비행은 기업들의 원가 부담을 높이고 있다. 삼성증권은 국내 상장기업의 올 1분기 영업이익 증가율을 아예 0%로 예상했다. 2분기 이후 15% 정도로 다시 살아날 것이란 전망이다.

실물경기든 기업 실적이든 ‘침체’라는 말은 장기 트렌드나 실력 아래로 한동안 주저앉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거꾸로 해석하면 언젠가 원기를 회복해 실력을 발휘할 때가 온다는 뜻도 담고 있다. 침체는 고통을 가져오지만 새로운 기회를 잉태하기도 한다.

다만 기초체력이 허약한 기업은 침체기 때 도태해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침체 이후 회복기의 과실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지금 증시의 화두는 ‘리스크 관리’다.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리는 여유, 한 곳에 집착하지 않고 여러 자산에 돈을 나눠 넣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중이 공포에 떨 때 시장은 바닥이었던 적이 많다. 아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