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 출신을 선장으로 뽑은 신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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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통합민주신당이 어제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를 새 대표로 선출했다. 그러나 당은 안개 속을 항진하는 것처럼 불안하다. 한나라당 출신을 당의 구원투수로 뽑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많은 당원과 지지자가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당장 친노 세력의 수장인 이해찬 전 총리가 탈당했다. 탈당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분화는 겨우 시작일지 모른다. 4월 총선에서 참패하면 태풍은 다시 온다. 다시 지도부가 바뀌거나 당 자체가 대수술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내부가 분열하지 않고 국민의 지지가 유지되면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200석(3분의 2)을 넘는 공룡이 될 거란 전망이 많다. 수도권을 싹쓸이할 거란 얘기도 돈다. 적절한 수준을 넘어 집권당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정치 원리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자유신당까지 가세하면 보수 정당은 헤비급이 된다. 이를 견제하는 진보 정당이 플라이급이라면 우리 사회는 너무 기형적인 새가 돼 제대로 날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공화·민주, 영국은 보수·노동당이 적절한 세력 균형을 이루며 사회 발전을 지탱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진 건전 야당은 필수적인 존재다. 신당에는 이런 역사적 임무가 주어져 있다. 그런데 신당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당의 육체는 친노 대 반노, 진보 대 실용, 구(舊)민주당 대 신세력 등으로 갈라져 있다. 당의 정신은 국민의 욕구와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어내질 못한다. 새 지도부를 맞은 신당은 자신과의 혹독한 싸움을 치러야 한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실패한 국정 운영에 책임이 있는 중진·386들은 물러나고 새 피를 수혈해야 한다. 정신도 바꾸고 몸도 바꿔야 유권자들에게 ‘건전 야당의 재건’을 호소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4월이 지금보다 더 추울 것이다. 특정 지역에서만 국회의원을 갖는 소수 세력으로 쪼그라들지 모른다. 5년 실정의 죗값일 수도 있으나 건전 야당의 존재를 걱정해야 하는 국민이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