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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북한의 두얼굴-강냉이죽과 코카콜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우리는 최근 신문 보도를 통해 북한의 서로 다른 2개의 얼굴에 접하고 잠시 어리둥절하게 된다.하나는 굶주림의 북한이고 다른 하나는 코카콜라의 북한이다.
북한이 굶주림의 나라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그런데 최근 글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북한에 잠입해 취재하고 돌아온 이찬삼(李讚三)시카고 中央日報 편집국장의 연재물은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이 얼마나 처절한 수준에까지 와 있는 가를 생생히묘사하고 있다.『한끼라도 배불리 먹어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북녘 동포들의 진솔한 표현에 독자들은 가슴아팠을 것이다.그 연재물이 끝나는 날,우리는 미국의 코카콜라가 가까운 장래에 북한에 상륙하리라는 기사를 읽게 됐다.문 학평론가 이어령(李御寧)교수는 코카콜라를 가리켜 「쇠를 녹여 만든 물」과 같다고 표현했다.그 짧은 비유에 암시돼 있듯 코카콜라는 어떤 무겁고 단단한 물질의 용해와 연관된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코카콜라는 육식 국민의 음료수다.비프스테이크와 같은 고깃 덩어리를 주로 먹는 서양 사람들이 기름기도 씻어내고 고기의 소화를 돕기 위해 코카콜라를 마시지 않는가.햄버거와 코카콜라가 함께 따라 다니는 메뉴라는 사실이 그 점을 말해 준다.코카콜라는 매일 많이 마시면 치아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주장도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간다.
이렇게 볼때 강냉이를 주식으로 삼는,그나마 강냉이도 넉넉히 먹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코카콜라는 아직은 썩 어울리지 않은 것 같다.그렇다고 해서 북한 주민들은 코카콜라를 마실 자격이 없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그들이라 해서 왜 코카콜라가거부돼야 하겠는가.필자는 북한 주민들이 앞으로 고기도 양껏 먹고 코카콜라도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도 굶주림과 코카콜라의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결합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널리 알려져 있듯 코카콜라는 미국을 상징하는,또는 미국의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3대 상품가운데 하나다.다른 2개는 햄버거와 월간지 『플 레이보이』이다.따라서 코카콜라의 북한 상륙은 곧바로 미국 자본주의의 북한 상륙을 상징한다.
일찍이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미국의 코카콜라가 후진국에 들어가면 그 나라는 미국의 콜러니,곧 식민지가 되고 만다고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말했다.「코카콜라에 의한 식민지화」라는 뜻에서 「코카콜러니제이션」이란 말도 만들어 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코카콜라를 상식(常食)하는 나라의 국민들은,특히 청소년들은 미국적 생활방식에 대해 호의적 태도를 갖는다고 한다.그래서 그 나라는 자연스레 친자본주의적이면서 친미적(親美的)성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이렇게 볼 때 「코카콜러니제이션」이란 말이 지나친 말은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바로 이 점때문에 지난날 사회주의 국가들은 코카콜라가 자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특히 리비아.이라크 같은 극단적 반미(反美)독재 국가들은 여전히 코카콜라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코카콜라의 이러한 정치적 성격을 북한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코카콜라의 상륙을 받아들이기 위한 상담을 진척시키고 있다.이것은 1970년대 초 공산주의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면서 코카콜라를 받아들였고,80년대말 옛 소 련의 고르바초프가 개혁.개방을 부르짖으면서 모스크바 중심지에 코카콜라와 햄버거를 함께 파는 맥도널드 상점의 개설을 허용했던 일들을 연상시킨다.
모스크바에 맥도널드 상점이 열리던 때 소련의 청소년들은 그 전날 밤부터 무리진 채 주변에서 기다렸다.마침내 상점 문이 열렸을때 철야했던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한꺼번에 몰려 들어갔다.이 광경을 보고 서방 특파원들은 『미국의 자본주 의가 간단히소련 공산주의를 정복했다』고 논평하면서 소련에서는 독재 체제의상징이던 「수용소 열도」가 사라지고 「맥도널드 열도」가 나타날것이라고 전망했다.
코카콜라의 북한 진출이 북한의 자본주의에로의 접근이나 친미에로의 전환을 뜻하는 하나의 신호일까.미국의 코카콜라는 북한의 경직된 교조주의적(敎條主義的)체제를 서서히 녹여 갈 것인가.
어떻든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는 北.美 관계 개선이 궁극적으로 북한을 시장경제쪽으로 전환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기를 빌며,그렇게 해서 북한 주민들이코카콜라를 고기 소화제로 애용할 만큼 향상된 생활수준을 누리게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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