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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 전담하는 법원 파산부 판사들 “우리는 기업 회생 전문 CEO 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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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비오이하이디스 박해성 대표<右>가 서울중앙지법 이진성 수석 부장판사<中>와 이성용 주심판사<左>에게 회사의 경영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사진=김형수 기자]

 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건물 3층 사무실. 이진성(52) 수석 부장판사와 이성용(38) 주심판사는 법전 대신 노트북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파워포인트로 작성된 액정표시장치(LCD) 제조업체 비오이하이디스의 새해 업무 계획 보고서다.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이 회사 박해성(49) 대표는 ‘판사 CEO’들에게 새해 첫 업무보고를 했다. 박 대표는 노트북에 뜬 자료를 보여주며 재정 현황, 새해 매출·이익 목표 등을 브리핑했다.

 박 대표는 “햇볕이 비춰도 화면이 잘 보이는 신기술 개발로 경영 상황이 크게 좋아졌다”고 보고했다. “올해 매출액을 법정관리 신청 직전 수준인 4억8000만 달러로 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수석 부장판사는 “현재 대만 회사가 비오이하이디스를 2600억원에 매입하려 하고 있다”며 “법정관리 1년 만에 회사 경영이 정상화됐다”고 설명했다.

 파산부가 만들어진 것은 1999년이다. 외환위기가 터지고 나서 2년 후였다. 세계은행(IBRD)이 20억 달러의 구조조정 차관을 제공하면서 파산법원의 신설을 요구한 것이다. 대법원은 민사 50부의 이름을 파산부로 바꿨다. 출범 당시 6명의 판사로 구성됐던 파산부에는 현재 17명의 판사가 일한다. 이들이 8개의 합의부와 20개의 파산 단독, 7개의 개인회생 단독재판부를 운영하고 있다.

 법정관리 대상 기업들은 파산부 판사들을 ‘우리회사 CEO’로 부른다. 회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파산부 판사가 대표(법적으로는 관리인)를 임명하고 회생·변제·매각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심사해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파산부는 한때 재계 서열 5위 규모로까지 커졌었다. 관리하는 자산 규모의 합계가 30조원이나 됐기 때문이다. IMF 사태로 부도난 기업들이 무더기로 법정관리를 신청해서다.

 파산부 판사들의 목표는 기업들을 빨리 정상화해 ‘졸업’시키는 것이다. 현재 파산부에는 30여 개의 중소기업만이 관리 대상으로 남아 있다. 그동안 100여 개의 크고 작은 기업이 파산부를 통해 회생의 길을 찾은 것이다.

 지난 2일엔 2005년 법정관리에 들어간 삼보컴퓨터가 2년여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삼보컴퓨터는 2000년 매출액 4조원으로 ‘PC의 명가’로 불리다 컴퓨터 업계의 저가 경쟁으로 자금난에 빠졌었다.

 삼보컴퓨터 관계자는 “회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할 때는 ‘망했구나’ 싶었지만 법정 관리를 받는 과정에서 기업의 투명성과 사업 성공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회생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대한통운도 곧 인수 대상자가 결정된다. 2000년 지급보증을 해준 동아건설이 부도처리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갔지만 위기를 넘기고 새 주인을 찾게 된 것이다. 지난해에는 매출액 1조1700억원으로 업계 1위를 고수했다. 법원이 인수 희망 기업들에 최저 입찰가격으로 2조3352억원을 제시했을 정도로 알짜 기업이 됐다.

 한보, 한보철강, 건영식품, 굿모닝시티 등 17개 업체는 회생계획을 제시해 법정관리 인가를 받은 상태다.

 이성용 주심판사는 “파산부 판사는 민·형사 재판부와는 달리 일반 회사의 CEO 역할을 해야 한다”며 “경영 마인드는 물론 회사 임직원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박성우 기자 ,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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