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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월요인터뷰

“당장 논술 가이드라인부터 없애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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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만난 사람 = 송상훈 정책사회데스크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의 위상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교육인적자원부가 틀어쥐고 있었던 대입 관련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대교협은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학생 선발 방식을 정하고 대학 간 입장이 달라 문제가 생기면 이를 조정해 나가야 한다. 교육계 일부에서는 “대교협이 그런 능력이 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또 자율을 주는 만큼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도 생겼다. 대교협 차기 회장인 손병두 서강대 총장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대교협 회장의 공식 업무는 4월에 시작되지만 손 총장은 벌써 ‘자율’과 ‘책임’을 동시에 충족시킬 묘수를 찾고 있었다. 4일 손 총장을 만나 대입 자율화에 대한 대교협의 역할을 물어봤다.

-대교협이 대입 업무를 교육부로부터 이양받는다. 당장 뭘 할 수 있나.

 “논술 가이드라인부터 폐지할 것이다. 교육부는 그동안 대학별 논술시험 출제에 있어 단답형 금지, 특정 교과 지식 측정 금지, 영어 지문 금지 등 이른바 ‘논술 가이드라인’으로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제한해 왔다. 이런 규제가 바로 교육부의 존재 이유였다. 대입 자율화를 하면 그럴 필요성이 없어진다. 대교협이 회원 대학에 내신 반영비율은 몇 %로 하고 수능 등급 간 격차를 어떻게 하라는 식의 지침을 내릴 필요도 없다. 지금까지 입시는 세세한 부분까지 교육부가 간여하고 변별력이 없어진 상황에서 대학들이 논술고사를 치르면 그것도 쥐어짜 논술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던 것이다. 지난해는 이런 과잉 규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는 시점이었다. 논술 가이드라인 폐지부터 먼저 하고 그 다음에 입학처장 논의를 거쳐 등급제 문제나 내신·수능 반영비율 등을 협의할 것이다.”

-대교협의 위상이 달라지면서 현재의 조직 구조와 역할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입시와 관련한 부정·비리를 우려하기도 한다.

“대교협 내에 자율규제 거버넌스(governance, 관리·통제)가 만들어져야 한다. 자체 감사를 통해 사회적 책무성에 소홀하지 않도록 하고 윤리적 문제의 발생을 막아야 한다. 강력한 감사를 통해 문제가 드러나는 회원 대학은 사법 당국에 고발하는 것도 불사할 생각이다. 비판하는 쪽에선 대학 편입학을 자율화해 놨더니 온갖 비리가 생겼다는 식으로 몰아붙인다. 극소수의 부정부패를 갖고 모든 대학이 비리의 온상인 듯 몰고 가선 안 된다. 회장단과 이사회에서 대교협 거버넌스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일단 인수위 쪽에서 이관할 업무 영역을 결정해 줘야 한다. 현재 시스템으로 입학 업무를 진행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자율적인 감독·감사 기능 등 거버넌스 문제는 크게 고민해 봐야 한다. 자율 규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면밀히 상의하겠다.”

-결국 ‘자율과 책임’의 문제가 된다. 지난 4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참석한 대교협 총회 오찬장에서 ‘자율과 책임’으로 건배사를 했는데….

 “이 당선인이 ‘어지간히 자율에 목마르셨던 모양’이라고 농담까지 했다. 대교협이 새로운 권력기구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핵심은 자율이다. 교육부의 업무를 가져와 또 다른 권력으로 기능하면 자율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대학 스스로 책임지는 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대교협이란 협의체에서 자율 규제하는 쪽으로 나가면 된다. 조정기구이며 협의체로서의 역할을 다할 뿐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자. 한 예로 보스턴 인근 대학들로 구성된 별도의 협회가 있지 않나. 이 모임에선 서로 학교를 평가한다. 입시에 있어 토플이나 GMAT 성적이 얼마 이상으로 한다는 식이다. 이런 기준을 놓고 각 대학의 커리큘럼과 교수진을 평가한다. 모임에 가입할 수 있는 기준을 주고 인증해 주는 식이다. 이 모임 대학 졸업자들이 대학원을 갈 때 서로 학력을 인정해 준다. 이런 방식으로 자율 규제가 이뤄지는 것이다.”

-업무 이양에 대해 언제쯤 인수위로부터 통보받았나.

 “공식적으로 통보 받은 바는 없다. 하지만 대입 업무 이양은 이 당선인의 공약 사항이다. 19일 대선 결과를 보고 바로 대교협 내에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었다. 대교협 내 고등교육원장을 팀장으로 하고 대학 입학처장을 거친 교수를 포함해 11명으로 실무팀을 만들었다. 이장무 회장과 상의해 이달 중순 TF팀이 작성한 내용을 갖고 회장단 회의를 열기로 했다. 교육부에서 넘어올 업무에 대해 예상하고 필요한 조직 개편 등이 거론될 것이다. 회장단 회의를 거치면 정식으로 이사회에 올려 논의한다. 당장 이번 주에 각 대학 입학처장 회의도 예정돼 있다. 새 정부 출범 전까지는 큰 그림이 나올 것이다.”

 -‘평준화 등급제’의 문제가 많다. 표준점수제로의 회귀, 백분위 점수 정보 제공 등의 해법이 거론되고 있다. 어떻게 바꿔야 하겠나.

 “상당히 전문적인 분야다. TF팀에서 대안을 강구할 것이다. 입학처장의 의견도 중요하다. 각 대학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입시제도가 나올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등급제가 무슨 실효성이 있겠나. 내신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각 고교는 대학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학생부 성적과 평가 방법뿐 아니라 교과 내용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다. 수능도 원점수·표준점수·백분위 등을 각 대학에 제공해야 하지 않겠나.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 뒤 각 대학에 따라 다양한 정책이 나올 것이다. 우리는 수능만으로 가겠다든가, 내신만으로 가겠다는 식의 대학별로 특색 있는 전형 방식이 마련될 것이다. 다양한 조합이 나오지 않겠나.”

 -대학별 학생 선발 방식이 너무 다르면 수험생이 더 힘들어질 수도 있지 않나.

 “수험생과 학부모만큼 입시에 대해 고민해 온 입학처장들이 구체적인 안을 갖고 나올 것이다. 대학별로 다양한 전형을 고민하겠지만 몇 가지 유형으로 단순해질 것이다. 이를 놓고 대교협 차원에서 논의를 한다. 전형 방식이 너무 다양해지면 고교에서의 교육이나 수험 준비가 매우 힘들다는 의견이 나오면 다소 조정하는 방식이 될 것 같다. 교육부만큼이나 대교협도 고교 교육의 정상화에 대해 고민한다.”

 -대학입시 자율화가 고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교육비 증가와 공교육 황폐화 등에 대한 걱정이다.

 “지금까지 교육부는 대학입시를 갖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원인 진단과 대책 마련이 모두 잘못된 것이다. 공교육 정상화는 대학입시와 별개로 그 안에서 별도의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최근 일본에서 교사 자격증을 10년마다 갱신하기로 한 것이라든지 미국 뉴욕에서 성적 나쁜 학교는 폐교시킨다든지 하는 방식이 있다. 평가와 경쟁 시스템으로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해법이다. 평가가 없는 곳에 실력 향상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선 학교교육의 정상화가 가능하지 않다. 평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교사가 열심히 학생을 가르치고, 그 결과로 점수가 공개되면 이를 교육 수요자가 비교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를 보고 더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으로 공교육 정상화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학을 보자. 중앙일보나 대교협에서 대학 평가를 하고 순위를 매기니까 다소간 불만이 있어도 다들 열심히 하려고 드는 것 아닌가. 평준화를 없애지 않으면 공교육 정상화가 어렵다. 당장 평준화를 푸는 것이 어렵다면 자사고 설립을 늘리는 방향으로 단계적인 접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선정을 둘러싼 갈등이 심하다. 당장 이달 중에 예비인가 대학 발표가 있다. 각 대학은 사활을 걸고 있다.

 “로스쿨 도입은 정부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로스쿨 도입에 있어 나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준칙주의로 가자는 입장이었다. 인가 기준을 발표하고 그 기준만 넘으면 로스쿨 설립을 허용해 주면 된다. 그 속에서 경쟁이 일어나 우수한 법률가를 양성하는 곳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탈락하는 시스템으로 갔어야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총정원을 정해 놓고 일종의 ‘철밥통’을 만들어 버리는 방식이 됐다. 이렇게 되면 각 로스쿨이 잘 가르치든, 못 가르치든 상관이 없어진다. 최초에 로스쿨을 인가 받기 위한 경쟁만 일어나고 그 뒤 교육에 있어 질적인 경쟁이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당장의 해법은 간단하다. 총정원을 늘리는 것이다. 대학끼리 ‘밥그릇 싸움’ 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현재 2000명으로 굳어진 로스쿨 총정원을 2500명 선으로 늘리자는 제안을 인수위에 전달했다.

 
손병두 대교협 회장은 …

전경련 부회장 지낸 서강대‘CEO 총장’

4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대교협 정기총회에서 14대 회장이 됐다. 2005년 천주교 신부(神父)가 아닌 평신도 출신으로는 처음 서강대 총장에 취임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부회장이라는 경력 때문에 ‘CEO 총장’이라는 별칭이 따라 다닌다. 총장 취임 직후 “4년 임기 동안 무보수로 일하며 1000억원의 학교 발전기금을 모으겠다”고 해 주목받았다.

대교협회장, 서강대 총장 외에 현재 각종 단체의 회장·이사·자문위원·고문, 대학의 초빙·객원·명예교수 등 26개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약력=▶경남 진주 출신 ▶경복고·서울대 경제학과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경영관리담당 이사, 제일제당 기획·홍보·마케팅·지역관리담당이사 ▶전경련 상근부회장(1997~2003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1982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법을 근거로 설립된 특수법인이다. 전국 201개 일반 4년제 대학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회원 권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주로 해 왔으나 새 정부에선 교육부가 관장하던 대입 업무를 넘겨 받게 된다. 현 회장은 이장무 서울대 총장이며, 차기 회장인 손병두 서강대 총장은 4월 8일부터 공식 활동한다.

정리=배노필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