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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두우시시각각

신당, 이러다간 일본 사회당 꼴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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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좌파의 인적 자산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나마 있던 인적 자산이 거의 정치에 투입됐던 결과다. 1970년대와 80년대 운동권 출신 중 명망가 치고 재야에 남은 이가 별로 없다. 직접 정치에 수혈된 것만 해도 1987년, 91년, 97년, 2000년, 2002년, 심지어 2007년 대선까지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10년 집권 세월 동안 권력 주변에서 단맛에 취했던 이가 오죽 많았는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존립의 위기를 맞은 진보좌파에 새 길을 제시해 줄 이론가도, 수혈될 인물도 없게 된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을 보라. 국민은 대선을 통해 파산을 선고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남은 찌꺼기라도 먼저 주워 먹겠다고 난리다. 당 중진이라는 자들은 이 와중에 당 대표 자리에 군침을 흘리고, 각 계파는 이 틈에 당권을 차지하겠다는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이 회생할 생각은 않고 사장 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진흙탕 싸움이나 하는 형국이다. 집단지도체제니,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니 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당 대표를 경선으로 선출하든 합의해서 추대하든 국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심지어 친노세력을 2선으로 내쫓는다고 해서 국민에게 감흥을 줄 것 같은가. 민주당을 부수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던 이들, 탄핵 역풍 덕에 국회의원 직을 공짜로 줍다시피 한 ‘탄돌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노 정권에서 총리나 장관, 당 의장을 했던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만 살겠다는 얄팍한 술수에 불과하다. 지금 신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이 국민과는 거리가 먼 ‘그들만의 게임’일 뿐이다.

 아직 혼이 덜 났나 보다. 야당이 됐다는 실감이 아직 나지 않나 보다. 대선 이후 국민의 눈에 연민보다는 점점 더 냉소가 담기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가 보다.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이회창 후보의 득표율이 63%다. 자칫하다가는 진보좌파 정당은 설 자리조차 없어질 수 있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자민당의 장기 집권을 유일하게 견제했던 게 사회당이다. 그 사회당이 96년 이후에는 일본 정치에서 흔적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몰락했다. 서구의 좌파정당보다 더 좌파의 이념으로 무장했고, 사회 경제적 변화에 둔감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60~7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기에도 미·일 안보조약 반대, 자위대 폐지, 비무장 중립 등에 빠져 있었다. 심지어 “복지정책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가로막고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한다”며 배격했다. 결국 복지정책은 자민당의 몫으로 돌아갔고, 사회당의 지지 기반은 무너졌다. 94년 자민당의 분당으로 잠깐 집권할 수 있었지만 대세를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스스로의 변화에 실패해 자멸하고 만 것이다.

신당이 그 길을 걷고 있다. 대북 문제에 치중해 경제 이슈를 외면했다. 진보좌파 몫이어야 할 복지 문제를 부각하는 데도 실패했다. 이래서는 총선에서 재기하기 어려우며, 새 정부가 시장만능주의에 빠지거나 실적 위주의 무리한 경기 부양을 할 경우에도 견제할 세력조차 없게 된다.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로 함께 나는 게 건강한 사회라고 한다. 그래서 국민이 알아서 진보좌파를 부활시켜줄 것이라고? 터무니없는 착각 하지 말라. 국민은 아무 희망도 없는 정당에 표를 줄 정도로 바보가 아니다. 보수 양당 시대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안 그래도 힘든데 왜 이렇게 가혹하게 질책하느냐고 섭섭해할 것 없다.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져서는 안되겠기에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진보좌파가 과거의 영화를 깨끗이 잊고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일본 사회당 꼴이 된다.

김두우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