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족쇄’ 출총제 폐지하면 2002년 일본처럼 투자 확 살아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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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를 맞아 대기업들이 20년간 꾸어왔던 꿈 하나를 이루게 됐다.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폐지’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법”이라며 없애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삼성·LG 등 대기업들이 얼마나 투자를 하느냐다. 지금껏 기업들은 출총제가 투자의 걸림돌이라고 말해 왔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앞으로 투자가 크게 늘어나야 한다. 일단 투자용으로 기업 내부에 쌓아 둔 돈은 유례없이 많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출총제를 폐지하면 재계 전체로 10조4000억원가량의 출자 여력이 생긴다고 말해왔다.

 ◆실제 투자 얼마나 늘까=그동안 정부는 기업들의 불만을 고려해 출총제 적용 대상을 줄이고 예외 규정을 허용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이 법을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아 왔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 7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대기업 200개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응답 기업 10곳 중 9군데(93%)가 ‘출총제로 신규사업에 진출하는 데 직·간접적인 제약을 받는다’고 응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유망 기업 등의 인수에 어려움이 있다’는 응답이 42%로 가장 많았다. 이어 ^협력업체에 대한 출자 애로 (34%) ^외국인 투자 유치 어려움(21%) 등이 뒤를 이었다. 따라서 출총제가 폐지되면 이런 걸림돌들이 사라질 전망이다.

 전경련의 김민성 글로벌 경영팀 연구원은 “일본도 고이즈미 총리 때 출총제를 없애자마자 도요타·캐논·샤프 등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며 “이 제도가 폐지된 2002년 새 공장 설립이 844건에서 2006년에는 1782건으로 두 배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한국도 출총제를 폐지하면 일본과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출총제 폐지는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도 ‘단비’가 될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의 오문석 상무는 “앞으로 대기업의 중소기업 투자나 자금 지원이 크게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대기업이 현재 신수종 사업 발굴과 관련해 ‘점 찍어둔’ 기술·벤처기업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이명박 당선인이 추진하는 ‘한반도 대운하’사업 등 국가 프로젝트에도 대기업의 참여가 한층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들도 ‘특수목적회사(SPC)’등 다양한 형태의 회사 설립이나 출자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출총제 적용 대상을 그동안 많이 축소했다고는 하지만 대기업들에는 족쇄처럼 인식됐었다”며 “앞으로는 다양한 투자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겼다.

 ◆경영권 강화에만 열 올릴 수도=출총제 폐지를 반대해 온 일부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참여연대는 홈페이지를 통해 “경제력 집중 및 소유 지배구조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출총제)폐지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폐지를 반대하는 쪽에선 특히 외환위기 직후 한시적인 출총제 폐지로 빚어진 ‘부작용’을 거론한다. 당시 대기업 오너들은 이 틈을 타 투자는 하지 않고 계열사 보유 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방어하는 쪽으로 악용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전경련의 이승철 전무는 “외환위기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반박한다. 당시엔 출자 자금 대부분을 부채 비율 200% 달성 등 정부 정책에 발맞춰야 하는 데다 외국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 역시 만만치 않았던 ‘특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 전무는 “지금은 기업들이 너나없이 ‘미래 유망사업’을 찾아나선 상황인 데다 새 정부도 출총제 폐지 보완책 마련을 약속한 만큼 대기업 오너의 지분 늘리기 수법으로 악용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표재용·안혜리·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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