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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X세대>3.러시아 下.내집 갖기전엔 결혼 안할래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요즘 러시아 여자애들은 바르비 인형을 갖고 논다.『바르비는 좋은 집도 있고 자동차도 있고 예쁜옷도 많아요.』 모스크바의 한 장난감 가게에서 만난 카차(7)가 왜 미국산 바르비인형을 좋아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답한 말이다.
유리성의 공주인 바르비인형을 쓰다듬는 그녀의 표정은 옆에 선엄마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하다.자신의 인생을 현대판 부르주아적삶에 대입시키고 싶은것.
이것이 러시아 젊은 여성들의 꿈이라면 꿈이다.
『결혼은 아내에게는 축복, 남편에게는 천벌입니다.』돈 잘 버는 남편 덕분에 일 안하고 사는 자신의 아내를 두고 니콜라이 키리첸코(29)씨가 하는 말이다.
모스크바의 중상류층 거주지역 크릴라츠코예에 사는 젊은 사업가니콜라이의 아내 옐레나(28)는 남편 수입으로 생활이 충분해지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전에는 일하고 말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태어나서 일하는게 삶인줄 알았습니다.
집안 일만 할수 있는게 즐거워요.』 옐레나의 말이다.
전업주부를 기피하는 경향이 높아가는 우리에게는 언뜻 이해하기어렵지만 과거 소련여성의 삶을 지켜본 사람이면 이해가 된다.남녀평등이란 이름하에 소련여성들은 직장과 집안일 사이에서 2중으로 시달려야 했다.
저녁에 직장에서 나와 시장 바구니를 들고 긴 줄을 서고 집에들어와 식사 준비를 해야 했다.
이제는 마이크로 오븐,세탁기등 가전제품이 널리 보급되고 슈퍼마켓에 패스트푸드가 등장했다.
여성들에게 이제 집안일은 전같이 지겨운 것이 아니고 오히려 즐거워지기까지 했다.
또한 부르다나 보그,코스모폴리턴등 서양의 패션과 미용 잡지가러시아에 들어오게 되고 새로운 모드가 보급됨에 따라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모습을 처음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여성들이 직장을 떠나 여성일에 전념하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 경제력이 있는 남편을 원한다.『아내가 전업주부가 됨에 따라 가장의 역할을 떠맡게 된게 신세대 부자 남편들의행복한 고민』이라는게 니콜라이의 말이다.
소련시절에는 결혼하는데 그렇게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주택은 거의 무상에 가까운 공동주택을 분배받거나 시부모나 친정부모 집에 방 한칸을 빌려 살면 됐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자신의 집을 갖고 싶어한다.
『자기 집을 갖기 전에는 결혼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페테르부르크 시내 그리보예도프 개천 옆에 자리한 한 아파트에 사는 나제주다(24)의 말이다.
구소련의 유물인 공동주택에서 3살배기 아들.남편과 함께 사는그녀는 한 지붕 세 가정의 집단적 삶의 고충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천장이 높은 스탈린시대 건물인 이아파트는 여관같이 일렬로늘어선 방마다 한가구가 산다.
각 세대를 가린 커튼이 담장의 역할을 한다.
화장실과 부엌은 공동, 통로 끝의 부엌에는 오븐 하나.
각 세대가 순번대로 요리를 해야한다.
차례 를 기다려 끓인 냄비를 그녀가 방까지 가져왔을 때는 이미 식은 다음이었다.
한방.한가족의 살림은 책상을 식탁으로 쓰고 소파를 침대로 쓰는 혼합형이다.
남편에게 서재를 만들어 주고 아들에게 침실을 만들어 주기 위해 방을 책장으로 3등분했다.
이쯤되면 삶이 피곤하지 않을 수 없다.
***결혼 늦어지고 독신도 늘어 『이웃에 아이를 맡길 수도 있고 어려운 일을 의논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1가구 다세대의 삶이 나쁠것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통제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가족은 외부와 분리된 나만의 사유재산이 돼야 할 것 같습 니다.요즘 자기 집을 마련한 친구들을 보니 부러워지고 불만이 생깁니다.』 그녀의 남편 사샤(24)의 말이다.
전기기술자인 그는 한달에 70달러 정도를 버는데 직물공장에서일하는 부인의 월급을 합쳐봐야 1백50달러가 안된다.
방 하나짜리 아파트라도 독립된 주택을 월세로 얻어 나가는게 이 부부의 소원이다.
결혼의 선택과 책임감에 따른 각성이 일며 최근에 젊은이들의 결혼연령이 높아지고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전에는 결혼평균 연령이 22~25세였으나 요즘은 남자의 경우 30세까지 늦추는게 일반화되고 독신도 늘고있다고 ■다.
결혼해서 아이를 안낳는 것도 전에는 「범법 행위」처럼 치부되었다. 무자식 가족은 월급의 6%라는 출산 지연 과태료까지 국가가 물렸다.
가족을 사회 노동력의 공급원쯤으로 여기는 사회주의 체제하에서는 당연한 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가정이 사회의 문제가 아닌 개인 행복의 원천이라는 생각이 젊은이들에게 확산되면서 가정생활의 모습도 다양해지는게 러시아의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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