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토 피살 때문에 외교 문외한 들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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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 공화당의 대선 경쟁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최근 외교 분야의 무지(無知)를 드러내는 실수를 잇따라 저질렀다. 그런 가운데 공화당의 돈줄인 월가에선 '반(反)허커비 운동'을 강화하고 있다. 내년 1월 3일 아이오와주에서 코커스(당원대회) 형식으로 실시되는 첫 경선을 코앞에 둔 허커비에겐 악재가 겹친 셈이다.

허커비는 베나지르 부토 전 파기스탄 총리 암살 사건이 발생한 직후 그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서 두 차례 실수를 했다. 그는 27일 "파키스탄의 비상계엄 유지 여부와 상관없이 부토 암살이 파키스탄에 미칠 영향을 미국은 정확히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달 초 파키스탄에서 비상계엄이 해제된 걸 모르고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CBS 방송은 "외교 분야에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 허커비로선 감추고 싶은 실수"라고 꼬집었다.

허커비는 다음날 "라티노(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인)를 빼면 미국에 불법 이민자로 가장 많이 들어오는 사람은 파키스탄인"이라며 "부토 암살을 계기로 파키스탄 입국자의 이상 행동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불법으로 미국에 들어온 파키스탄인 수는 660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엉터리로 드러났다. 또 파키스탄인 불법 이민자 수는 필리핀.인도.중국인보다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허커비 선거캠프의 고위 관계자는 "허커비가 외교 정책엔 좀 약하다"고 했다. 그걸 의식한 듯 허커비는 27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존 볼턴 전 유엔대사가 외교정책을 개발하는 일을 돕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볼턴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허커비는 또 이란이 2003년 말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했다는 내용의 미 정보기관 보고서가 이달 초 공개된 것도 모르면서 이란 문제에 대해 언급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 그에 대해 CNN 방송 등은 "허커비의 상승세가 주춤해질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월가(Wall Street.뉴욕 맨해튼의 남쪽 끝에 있는 구역으로 세계 금융의 중심지) 측에선 허커비 낙선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월가를 대변하는 정치단체 중 하나로, 친공화당 성향인 '성장을 위한 클럽(Club for Growth)'은 아이오와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허커비가 주지사(1996년 7월~2007년 1월)를 하는 동안 아칸소 주민의 세금은 평균 47%나 늘었다"며 "허커비는 진정한 경제 보수주의자가 아니다"는 내용의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월가가 허커비를 공격하는 건 허커비가 월가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나는 공화당 대선 주자 중 유일하게 '월가 투자은행의 자회사'가 아닌 사람"이라며 "공화당은 정책의 초점을 월가에서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도시의 상업 중심지로, 소매상 등 주로 중소 규모의 자본이 경제활동을 하는 걸 뜻함)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월가의 높은 연봉에 대해서도 "너무 심하다"고 여러 차례 비난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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