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역사] 8. 청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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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부선과 동래선이 갈라지는 한복판. 범일동의 커다란 기와집. 그것이 신경희씨 집이었다. 태극기를 흔들며 "여러분 오랫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국은 여러분을 따뜻하게 맞이합니다." 부산항에 상륙할 때의 감격에서 좀처럼 깨어나기 힘드는데 신경희씨는 우선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천응렬씨 등과 어울려 갔다. 깜짝 놀랐다. 큼지막한 두 채의 기와집. 대단한 환영이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내는 성찬. 부대 생활 때도 큰 얼굴 하던 버릇, 나한테도 이놈아야 저놈아야하던 대범, 일시에 이해가 됐다. 그럴 만한 뒷심이 있었구나.

천응렬.윤영중(尹英重, 일본명 도미야마.富山).김종욱(金鍾旭, 일본명 가나이.金井)씨와 경부선을 타고 경성으로 오는데 옆에 앉아 있는 친구가 피부색도 생김생김도 색다르다. 물어봤더니 버마사람이라고 한다. 인천에 가서 미군 배를 탈 작정인데 소매치기를 당해 낭패라는 것이 아닌가.

"어디서?"

"부산에 올라온 뒤에요."

"그건… 그건…" 하다가 나는 지갑을 꺼냈다. 새 출발에 무슨 창피냐.

"나도 몇푼 없으니까 이것만 받고… 가만 있자. 배에 탈 때 얘길 하라고… 내가 적어줄게" 영어로 편의를 봐달라는 말을 써서 주었다.

조치원에서 천응렬.윤영중씨와 헤어진 나는 청주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충북선으로 갈아탔다. 청주에 내렸더니 육군 소위 복장을 한 정만기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민기식(閔植).김종오(金鍾五).박승순씨 등이 모두 장교가 돼 돌아와 국방경비대라는 것을 조직했다. 같이해야겠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초라한 일등병 복장이라 사양한다고 했더니 갈아입으라며 장교복을 내놓았다. 송재만.정순택(鄭舜澤)씨도 장교가 돼 돌아왔다.

경성고상을 졸업한 정만기씨는 나중에 국방부 재무감을 지낸 육군 준장으로 한국전쟁 때 전사했다. 만주건국대 출신의 閔씨와 일본 주오(中央)대를 나온 金씨는 훗날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朴씨는 일본 교토(京都)대를 졸업했으며, 귀국 후 한일은행장을 지냈다. 정만기씨와 고교 동문인 정순택씨는 북한 간첩으로 활동하다 붙잡혀 32년간 복역했다.

소위복을 입고 하룻밤을 자고 나서 나는 군복을 벗어놓고 상업학교 시절 가장 존경하던 최종성(崔鍾聲) 선생을 찾아갔다.

"韓군이 부민관에서 사건을 일으켰을 때 우린 깜짝 놀랐지. 잘했어. 이제 뭘 할 작정인가?"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정만기군이 같이 국방경비대를 하자고 하더군요."

"자넨 군인 타입이 아니야. 모교에 와서 교편이나 잡아. 내일부터 나와."

집에서는 야단이 났다. 어머니가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그동안 일본인 순사가 매일 오다시피했어. 저기 아카시아나무 옆에 일본 깃대를 달아놓고 니가 훌륭하게 잘 있다고 했었는데… 전쟁에 지고나서 다 가버렸어."

"걱정만 끼쳐드렸어요. 이제부터 효자노릇 좀 할게요."

한운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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