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소비경제 진짜 좋은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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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21면

블룸버그 뉴스

미국 경제의 침체를 막을 최후의 보루인 소비 관련 지표가 엇갈리고 있다. 한 지표가 좋게 나오는가 하면 다른 지표는 나쁘게 발표되고 있다. 지난 22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11월 개인소비지출은 한 달 전인 10월보다 1.1% 늘었다. 월스트리트의 예상치(0.9% 증가)를 훌쩍 뛰어넘었다. 물가 상승분을 뺀 실질 소비도 0.5% 증가했다. 이도 월스트리트 예상치(0.3%)보다 높았다.

착시현상 가능성 커 침체 위험 여전

뉴욕과 런던 등 주요국 증권시장은 반색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위축됐던 증시가 반짝 산타랠리(성탄절 맞이 강세장)를 펼쳤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미국 컨설팅업체인 스펜딩펄스가 크리스마스 시즌(12월 1∼24일) 소매판매(자동차 제외)를 잠정 집계해 보니 한 해 전 같은 기간보다 3.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최근 3년 동안 최저 증가율이다. 애초 예상치는 4~4.5%. 미국 장사꾼들이 대목 중 대목인 크리스마스 시즌에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이른바 연말 쇼핑시즌의 전체 소매판매도 시원찮을 전망이다. 미국소매판매협회(NRF)는 11월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 사이 판매 규모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 정도 늘어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예측대로라면 최근 경기침체기인 2002년 이후 최저 증가율이다.
 
해몽도 제각각

경제 지표는 죽은 숫자라고 한다. 인간이 지식·정보·통찰력으로 해석해야 비로소 지표의 생명력인 의미가 드러난다. 꿈보다 해몽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죽은 숫자인 상무부의 11월 소비지출과 컨설팅·협회 등의 쇼핑시즌 판매 예상치를 놓고 전문가들은 요즘 엇갈리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낙관적인 쪽은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미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수석 전략가인 조너선 골럽은 “11월 소비지출이 괜찮았고 추수감사절(11월 넷째 목요일) 이후 시작된 연말 쇼핑시즌 소매판매도 나쁘지 않다”며 “고용이 지금처럼 계속 안정적일 것이기 때문에 2008년에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지는 일은 없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비관적으로 보는 쪽은 경기침체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프랑스 BNP파리바은행의 이코노미스트인 리처드 아이레이는 “2007년 분기별 소비지출 지표를 보면 줄어드는 추세가 틀림없다”며 “11월 한 달 소비가 예상보다 많이 이뤄졌다고 해서 흐름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적인 흐름상 소비는 둔화하는 추세며, 이는 경기침체를 알리는 전주곡이라는 설명이다.
 
미진한 꿈풀이

다른 전문가들은 양쪽이 모두 미 소비지표 속뜻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 자산운용사 노던 트러스트의 이코노미스트인 애셔 뱅거로는 “숫자 겉모습만으로는 최근 미국 소비지표 의미를 정확하게 짚어내기 힘들다”며 “기름값이 많이 오른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11월 소비지출이 전달보다 1.1% 상승했지만, 이 통계 자체가 금액 기준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름값과 전기요금이 비싸져 미국 소비자들이 돈을 많이 쓴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실제 11월 한 달 동안 미국인의 에너지 소비는 금
액 기준으로 5.9% 급증했다.

기름값 상승 때문에 소비 규모가 부풀려지는 현상은 연말 쇼핑시즌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스펜딩펄스가 집계한 크리스마스 소매매출 증가율인 3.6%도 기름값 상승분을 제외하면 2.4% 수준으로 낮아진다.

이처럼 숫자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최근 좋게 나온 소비지표들이 그다지 건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진실

최근 미국 집값 하락과 서브프라임 사태가 경제의 버팀목인 소비에 미치는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전문가들은 상무부가 발표한 11월 경제 지표 가운데 저축률을 주목하고 있다.

11월 미국 개인 저축률은 -0.5%로 나타났다. 개인 저축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은 올 들어 처음이다. 저축률은 또한 미국 경제가 2001~2002년 침체에서 벗어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동안 미국의 전체 저축률은 오랜 기간 마이너스 상태였다. 하지만 개인들은 경기침체 기간을 빼놓고는 월간 가처분 소득 가운데 0.5~1.5% 정도를 저축해 왔다. 그런데 지난 11월에는 번 돈보다 더 썼다. 미국인들이 빚을 내거나 저축했던 돈을 헐어 기름과 전기요금을 내고 연말 쇼핑을 즐긴 셈이다.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푸어스(S&P)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데이비드 위스는 “소비자들이 (서브프라임 사태 등으로) 음울한 기분을 털어버리기 위해 쇼핑한 듯하다”고 촌평한 뒤 “최근 집값이 급락하는 점에 비춰 내년 초에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스의 말대로라면 미국인들은 올 연말에 과소비한 셈이다. 집과 주식 값이 오르고 있는 동안에는 자산소득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단기적인 과소비가 직후 소비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최근 집값 하락률은 1988년 이후 최대다(세 번째 그래프). 증시도 불안해 투자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내년 1분기에는 소비가 줄어들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침체 우려는 여전

전문가들은 소비 추세가 일정한 경향을 보이지 않는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는 경제가 불확실하고 소비자들의 심리가 불안한 시기에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라고 진단한다. 실제 78년 이후 경기가 침체에 빠져들기 직전에는 소비 지출이 방향성을 잃은 채 들쭉날쭉했다. 때로 소비가 예상 밖으로 늘어 월스트리트 이코노미스트들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지만, 나중에 보면 일시적인 현상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측면에서 미 자산운용사 노던 트러스트가 최근 내놓은 경기침체 확률이 관심을 끈다. 금리·통화량·고용·소비지출 등 경제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계산한 확률에 따르면 12월 26일 현재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65.5%라고 노던 트러스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폴 캐서리얼은 주장했다.

이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이 최근 말한 침체 확률 50%보다 높은 것이다. 또 91년과 2001년 미 경기 침체 직전과 아주 비슷한 수준이다.

확률 추이를 보면 경기 침체가 발생하기 직전에 치솟은 뒤 급격히 떨어지는 패턴을 보인다(네 번째 그래프). 이 예측대로라면 2007년 말인 지금은 침체 직전인 셈이다. 월간 소비지출 같은 단기 지표의 일시적 개선에 기대 가슴을 쓸어내리기에는 아직 이른 셈이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경기침체를 과연 막아낼 수 있을지, 새해 벽두부터 세계의 이목은 미국으로 집중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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