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토 전 총리 피살 … 파키스탄 대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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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7일 파키스탄 라왈핀디에서 열린 선거유세에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연설하고 있다. 부토는 이 집회가 끝난 뒤 테러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라왈핀디 AP=뉴시스]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암살로 파키스탄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게 됐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비상사태 선포 42일 만인 15일 이를 해제해 겨우 안정을 찾아가던 정정이 다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당장 정국 안정의 시금석이 될 내년 1월 8월 총선이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야당인 파키스탄인민당(PPP)을 이끌어 왔던 부토의 돌연한 사망은 총선을 불과 10여 일 앞두고 파키스탄 전역을 테러와 유혈 폭동으로 얼룩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상사태 해제 발표 수시간 전에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약 120㎞ 떨어진 군기지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벌어져 5명이 숨지는 등 파키스탄의 폭력사태는 계속 이어져 왔다.

게다가 정부 기관들이 여당을 노골적으로 돕고 있어 총선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질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던 터였다. 암살당한 부토는 그동안 무샤라프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획책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자폭테러범이 누구인지는 즉각 밝혀지지 않았지만 부토 측은 최대 정적인 무샤라프 대통령 측을 비난하고 나섰다. 외신에 따르면 부토 지지자들은 그가 27일 사망한 병원 앞에서 무샤라프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무샤라프 측이 이런 무모한 암살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신 그동안 부토 암살과 내년 총선 저지를 공언해 왔던 파키스탄 내 이슬람 과격세력에 의혹의 눈길이 모이고 있다.

부토 암살은 파키스탄 국내 문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핵무기 보유국인 파키스탄의 정정 불안은 테러리스트들이 발호할 절호의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혼란을 틈타 이슬람 과격세력이 핵무기를 손에 넣을 경우 전 세계가 공포에 떨게 된다.

무샤라프 대통령과 손잡고 '테러와의 전쟁'을 벌여온 미국으로서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무샤라프의 지위가 흔들림에 따라 전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번 암살을 계기로 무샤라프는 다시 한번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철권통치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무샤라프가 군 참모총장에서 물러나고 비상사태를 해제하기는 했지만 야당과 국제사회는 아직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지적해 왔다. 무샤라프에 비판적이었던 대법관들이 비상사태 선포 직후 해임됐으나 아직 복직되지 않고 있는 것도 그 이유의 하나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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