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무례한 중국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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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역사는 반복된다'고들 말한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이 명제가 성립할 것인지는 차치하고 최근 벌어진 한 '사건'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닝푸쿠이(寧賦魁) 주한 중국 대사가 21일 만나 대담을 나눴다. 닝 대사는 이 자리에서 "대통령 취임 전에 특사를 파견해 주면 차기 정부의 중.한 관계에 대해…"라고 말했다. 이를 발표한 박형준 대변인은 "…특사 파견을 요청했다"고 부연했다.

한국 대통령 당선자에게 외국의 대사가 먼저 특사 파견을 요청하는 일은 아주 이례적이다. 대개 한국의 당선자에게는 상대국이 먼저 특사를 보내 당선을 축하하고 차기 정부에서의 일을 함께 논의하는 게 순서다. 이런 상식적인 관례는 제 아무리 힘이 센 미국이라도 깨지 않는다.

중국이 이를 무시하고 당선자 측의 특사를 먼저 받겠다고 나선 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중국 통일 왕조에 조공(朝貢)을 하고 책봉(冊封)을 받았던 과거 조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의 줄기찬 경제 성장과 국력 신장으로 중국이 스스로 세계 최고의 국가라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한국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크게 줄어든 것일 수도 있다.

중국 대사관 측은 26일 이에 대해 "과거 김대중.노무현 당선자 시절에도 같은 제안을 했다"고 설명했다. 먼저 특사를 받아들이겠다는 중국의 입장은 오래 전의 일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그런 중국의 태도에 이미 무뎌 있다는 얘기다.

인민일보 산하 국제뉴스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이런 보도를 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통화하고, 일본의 후쿠다 총리와도 전화했다… 중국은 빠졌다. 왜 중국은 빠뜨렸는가? (한국에) 중국이 없어도 된다는 말인가?"(12월 25일자)

이 보도는 부시 대통령과 후쿠다 총리가 이명박 당선자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온 점을 취재하지도 않은 중국 기자의 방만함에서 나온 듯싶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례를 무시한 채 자국 중심으로만 국제 관계를 파악하려는 중국 언론인의 무례하고 억지스러운 인상까지 지울 수는 없다.

정치.경제 등 전방위로 한국과 중국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래도 관례에 어긋나는 중국의 입장에 눈감을 수는 없다. 강대해지는 중국에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최선의 방도는 무엇일까. 결국 스스로 강해지는 길밖에 없다.

유광종 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