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불법 자금이 향토장학금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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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가 자신이 받은 불법 자금을 '향토장학금'으로 생각했다고 엊그제 법정에서 진술했다. 이는 그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금품을 받아왔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국민을 분노케 한다.

安씨는 지난해 3월과 8월 부산지역 업체 두 곳에서 2억원씩 모두 4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의 말대로 기업체가 정치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장학금을 건넸다면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더구나 지난해 8월은 그가 나라종금 불법 자금 수수와 관련해 재판에 계류 중이었던 때다. 그런데도 단순히 격려받는 자리로 생각해 아무 거리낌 없이 돈을 받았다니 그의 담대함이 놀라울 뿐이다.

안희정씨가 어떤 인물인가. 盧대통령의 왼팔이라 불린 측근 중의 측근이다. 그는 지난해 7월 한 월간지와의 회견을 통해 "총선에서 배지를 달든, 안 달든 21세기 신주류를 형성해 집권당 사무총장이 될 것"이라고 세대교체를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초엔 "젊은 세대가 정권을 잡은 것은 40년 만이다. 5.16 때는 군인들이 총칼로 한강다리를 건넜지만 우리는 노사모와 노란 목도리를 매고 한강을 건넜다"고도 했다. 그런 그가 불법 자금을 받아 아파트 중도금을 냈는가 하면 수수 금액도 계속 불어나고 있으니 기성 정치권의 구태.구악을 뺨칠 정도다. 이러고도 그가 새 정치와 세대교체를 말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安씨가 받은 불법 자금의 규모는 최근 단서가 포착된 10억원대를 포함해 모두 30여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나라종금으로부터의 금품수수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만 해도 그는 "나라종금의 '나'자도 모른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금품수수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던가. 지난 대선을 전후해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뒤에도 추가 금품수수 혐의가 밝혀지고 있어 그의 비리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安씨는 이제라도 자신이 받은 검은돈의 실체를 솔직히 털어놓아야 한다. 그에 대해 오래된 동업자이자 동지라고 감쌌던 盧대통령도 국민 앞에 사죄해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