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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불복종 투쟁 불붙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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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란 의회(마즐리스) 총선이 20일 예정대로 시행됐다. 보수파의 압승이 예상된다. 보수파가 개혁성향 후보들의 출마 자격을 대거 박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파가 승리하더라도 개혁파 및 젊은층의 반발로 이란 정국의 앞날은 평탄치 않을 전망이다.

◆'의회 쿠데타' =2백90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을 둘러싸고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최대의 체제 위기를 맞고 있다. 보수파의 최고 권력기관인 '헌법수호위원회'는 총입후보자 8천명 중 2천4백여명을 '이슬람 가치와 헌법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출마자격을 박탈한 후 선거를 예정대로 강행했다. 보수파의 수장이자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는 모하마드 하타미 개혁파 대통령의 후보자격 박탈 결정을 철회하고 총선을 연기해달라는 요청을 모두 묵살했다.

이에 출마 자격이 인정된 5천6백명 중 개혁파 성향 8백88명도 자발적으로 후보사퇴를 선언했다. 자격을 박탈당한 개혁파 의원 80여명을 포함해 현역의원 1백17명은 사표를 제출하고 총선 자체를 보이콧했다. 남은 후보 4천7백여명 중 반수 이상이 보수파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중립적 성향의 지방 유지들이다.

◆"해도 너무한다" =2000년 총선에서 2백10석을 차지해 돌풍을 일으킨 개혁파는 자신들의 몰락을 힘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슬람 헌법하에서 '신의 뜻'을 전하는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뜻'을 거스를 방법이 없다. 지난 16일 개혁파 의원 1백여명이 하메네이를 정면으로 비난하는 서한을 보낸 게 이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불만표시다. 개혁파 의원들은 이날 하메네이가 '이슬람의 이름으로' 이란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유린하고 있다며 그의 종교적 권위에 도전했다.

그러나 개혁파의 더 큰 우려는 보수파의 '횡포'가 총선 이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는 사법부는 선거 전야인 19일 하메네이를 비판한 개혁파의 서한을 보도한 일간지 2개에 대해 정간 명령을 내렸다. 사법부는 이날 또 개혁파 최대정당인 '이란참여전선'의 테헤란 본부를 영장도 없이 폐쇄했다.

◆"투쟁은 이제부터"=총선으로 보수파가 군(軍)과 사법부에 이어 의회마저 장악하게 되면 개혁파의 입지는 급격히 약화된다.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던 이란이 다시 '거꾸로' 갈 수도 있다. 하타미 행정부의 개혁노력은 번번이 의회에 의해 거부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혁파와 학생 및 시민단체는 4천6백만 유권자들에게 선거 불참을 호소했다. 그러나 온건한 방법으로는 보수파를 꺾기에 역부족이다. 남은 것은 장외투쟁뿐이다. 특히 역대최저 투표율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들은 대규모 불복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이란 정국이 또 한차례 요동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의 중동 최대 무역국인 이란의 '위기'는 자동차.전자제품 등에 진출하고 있는 한국기업들에도 타격이 될 수 있다. 보수파는 외국 기업에 대한 선별적 진출 허용과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수입 제한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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